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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를 만나다

아내가 늦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막내 녀석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왔더니 아내가 대전역에 도착할 시간이 많이 남더군요.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살던 집에 가봤습니다. 저보다 먼저 심어진 나무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어 있지만, 집이 많이 낡아있더군요.

그 집 앞을 출발해 다니던 초등학교 등교길을 향해 산책을 나섰습니다.

매일같이 지나쳤던 그 길이 참으로 낯설더군요. 그리고 길을 걷다가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옛날집. 어릴 적에는 그 집이 그냥 옛날집이었는데 알고보니 '봉소루(鳳巢樓)'라고 하더군요. 대전시 지정문화재 35호로 등록된 등록문화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이 굳건하게 닫혀 있어 담벼락 위로 사진에 담아봤습니다.


봉소루는 대전 중구  석교동 61-2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성남씨 창의공파 종중 소유로 돼 있다네요. 무슨 푯말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텐데 그런 게 없어서 아쉽더군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야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기재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문산 남쪽 기슭에 있는 봉소루는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 학자이면서 교육자인 남분봉(1607∼1674)이 학문을 가르치던 서재이다. 원래 봉소재라 불렸는데 ‘봉소’는 새들의 보금자리란 뜻으로, 실제로도 봉소루 주위에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 등이 많이 있어 많은 새들이 오가고 있다.
봉소루는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으로, 숙종 40년(1714)과 영조 34년(1758)에 고쳐 세운 기록이 있다. 안채는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의 건물이고, 누는 앞면 1칸, 옆면 2칸 규모로 되어 있다. 안채와 누가 붙어서 ㄱ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누 정면에는 봉소루 현판이 걸려 있다. 1970년대에 건물을 고쳐 세웠으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말 이 오래되고 커다란 느티나무를 학교에 가면서 매일처럼 지나쳤었죠.


봉소루를 지나 아빠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보자고 했더니 막내 녀석이 좋다고 합니다. 그 녀석은 초등학교에 가면 놀이터가 있는 걸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죠.


예전에 그 낡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마치 새로지은 건물처럼 변신해 있더군요. 1학년 때 담임이셨던 조OO선생님, 2학년 때 투명인간 장난하다 떨어져서 다리 골절을 당해 깁스를 하고 다닐 때 화장실 간다고 하면 업어서 데려다 주시던 최OO선생님, 4학년 때 연필을 올바로 잡을 수 있도록 석고로 집필교정기를 하나씩 만들어 나눠주셨던 조OO선생님, 5~6학년 연속 담임을 해주셨던 육OO선생님이 한 분씩 떠오릅니다. 그런데 3학년 때 담임선생님 함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건 왜일까요? 오랫동안 잊고 살았기 때문이겠지만 선생님 함자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저 자신에 화가 나더군요....

너무나 예뻐서 그냥 좋았던 친구 최OO군의 누나, 야구하다 눈을 다쳐 나를 업고 20분 거리의 집까지 데려갔던 도OO군, 그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옛날 정원이 있던 자리엔 체육관이 서 있습니다. 정원이 정말 잘 꾸며져 있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정원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대가 있었습니다. 분수대는 당시 육성회장이던 한OO군들(이들은 쌍둥이였죠)의 아버지가 기증하신 건데 역시 종적을 감췄습니다.

정원의 한 은행나무에는 졸업식 전 날 가장 친했던 친구 이OO군과 조각칼로 하트모양을 새기고 각자의 영문이니셜을 새겼는데... 그 친구는 무얼하고 살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참 멀리도 왔습니다. 내 나이 마흔 둘.. 8년을 빼고는 대전에서만 오롯이 살아왔는데 옛날 친구들, 선생님들은 내 머릿속에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무심코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6학년 때 좋아했던 신OO양도 보고 싶네요..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뒷길은 포장된 도로가 없었고, 그 길 위로 막걸리를 잔뜩 실은 소달구지가 다녔죠. 몰래 뒤에 매달리면 5~6분 걸을 거리가 그냥 해결되곤 했는데... 살기는 더 좋아졌는데 세상은 더 각박해진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정이 넘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Paul Fé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