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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를 만나다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를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봤다. 일반 개봉관에서는 볼 수 없는 짐 자무쉬, 홍상수를 이 곳에서 봤다. 옛날 피카디리 극장을 아트시네마로 꾸며 놓은 곳인데, 시설은 보잘 것 없지만 이런 영화관이 대전에 한 곳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연출하고, 2010년 제63회 깐느 영화제에서 쥴리에뜨 비노쉬에게 여우 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영화다.


영화는 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가 쓴 에세이 <꼬삐아 꽁포르메(Copia conforme)>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시작된다. <사랑을 카피하다>의 원제는 <꼬삐아 꽁포르메>의 불어 번역인 <꼬삐 꽁포름(Copie conforme)>이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웬지 영화의 본질과는 어울리지 않는, 관객들을 유혹하기 위한 낚시밥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로 이뤄진다.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영화에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드레 브르통의 <나쟈(Nadja)>를 연상시킨다. 편집증 환자인 나자와 브르통의 대화말이다.

남편 없이 아들을 힘들게 키우는 '그녀'(쥴리에뜨 비노쉬)도 일종의 신경증 환자다. 그런 그녀에게 영국인 작가 제임스는 정신분석가다. 그녀의 무의식을 일깨우고, 그녀를 치유해간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도라'의 사례에서 치료에 실패했듯이 이 치료는 실패다. 결말부터 보자면 그렇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으로 가득차 있다. '그녀'가 제임스 밀러의 책 '꼬삐아 꽁포르메'를 여섯 권이나 산 것도 그 책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녀는 골동품, 그것도 진짜 같은 위작을 판매하는 상인이다. 제임스의 에세이집 제목이 바로 '원본같은 사본', 바로 '꼬삐아 꽁포르메'가 아니던가!


제임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나중에 이 둘의 대화에서 알게 되지만, 나폴리의 광장에서 한 모자를 봤기 때문이다. 항상 먼저 걸어가고, 가끔씩 아들이 뒤따라오는지 살펴보는, 언제나 나란히 걷지 않는 이상한 모자였다. '그녀'는 그 모자가 자신과 아들이라고 믿는다.(아니 정말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제임스의 가이드를 자처하면서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그 곳은 어쩌면 그녀가 결혼식을 올리고 첫날 밤을 보냈던 곳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란 암시를 관객들은 받게 된다. 그 곳에서 편집증 환자인 '그녀'는 제임스를 남편으로 대한다. 이렇게 된 것도 철저하게 우연이다. 한 까페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제임스를 남편으로 생각하자 '그녀'가 제임스를 그렇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서로의 다른 생각으로 논쟁을 벌이더니 이제부터는 부부싸움을 벌인다. '그녀'는 남편의 부재에 대해, 제임스는 홀로 지내는 안락함에 대해 서로의 주장을 내세운다.(둘의 논쟁을 듣다보면 40대 부부인 우리 부부가 참 공감하는 게 많은 내용이다.) 그러던 둘의 논쟁은 한 분수의 조각상을 놓고 정점에 이른다.

제임스에게 있어 이 조각상은 '꼬삐아 꽁포르메'일뿐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내가 언제까지나 기댈 수 있는 넓은 어깨, 그리고 그런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걸작품이다. 그녀는 그런 '가치'를 강조한다. 제임스는 그런 그녀의 감정을 잘 알고 있고, 아픔을 딛고 홀로 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부재하는 남편을 원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녀를 위태로워 보이게 만드는 걸까?


오후 5시가 다 되어 늦은 점심도, 이른 저녁도 아닌 식사를 하러갔다가 '그녀'는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귀걸이를 한다.

그런 그녀는 놔두고 제임스는 와인 타령을 한다. 웨이터가 '데귀스따씨옹'(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면 웨이터가 미리 맛보게 따라주는 것)으로 준 와인이 정말 형편없는데도 바꿔주지 않는다, 그런 몹쓸 관례는 무슨 놈의 관례냐는 등 제임스의 불평은 끝이 없다. '그녀'는 정말 화가 치민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남편이 부인을 앞에두고, 분위기를 망치고 있지 않은가!

부부의 식사는 완전 망쳤다. 이 때까지도 제임스는 '그녀'에게 남편이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우쳐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게뜨 빵 조각 하나씩을 들고 레스토랑을 나온 이들 '부부'는 성당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녀'가 성당 안에서 기도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이제부터 분석가는 '그녀'이고 제임스는 치료를 받는 대상이다.

'그녀'가 제임스를 이끌고 간 한 호텔. 그녀는 호텔 카운터에서 "15년 전 첫날 밤을 보낸 곳이다. 3호실을 잠시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녀와 제임스는 그 방으로 올라간다. 성당에서 종소리가 여러 차례 울린다. 제임스는 9시 기차를 타야했었다.

제임스는 '그녀'에게 정착하게 되는 것일까?
Posted by Paul Fé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