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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ire sans dormir

세계 4대 사막 ‘죽음의 레이스’ 도전하는 청년 이야기

 

올해 안에 아타카마, 고비, 사하라, 남극 등 4대 사막마라톤을 완주, 한국인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에 도전하는 한남대 기독교학과 4학년(린튼글로벌컬리지 복수전공) 최규영 씨

 

아타카마, 고비, 사하라, 남극…. 지구상에 남아 있는 최고 극한의 환경이다. 영겁의 세월을 거쳐 이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몸을 변화시켜 온 생명체만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이 4대 사막에서 죽음의 레이스가 펼쳐진다. 레이싱 더 플래닛(Racing The Planet)이 개최하는 ‘오지 사막마라톤’이 바로 그 대회다.

 

각 레이스는 모두 250㎞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6박 7일간 침낭, 헤드랜턴 등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28종의 장비만을 배낭에 메고 달려야 한다. 참가자격은 메디컬(medical) 서류를 통과한 만22세 이상이어야 한다. 음식은 일반 성인이 하루에 필요한 2000kcal씩 1만 4천kcal 이상을 휴대해야 한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내에 주어진 코스를 통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각 레이스마다 전 세계의 건각 150~160명이 참가하는 데 대개 20여명이 탈락한다.

 

세계 4대 사막에서 펼쳐지는 이 죽음의 레이스를 1년 이내에 모두 완주하면 ‘명예의 전당’ 에 헌액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1명만이 이 영예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이 모든 코스를 완주한 7명이 있지만 1년 이내에 모두 정복한 사람은 아직 없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도전에 나선 20대 젊은이가 있다.

 

최규영(28) 씨. 대전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4학년 학생이다. 이 대학 린튼글로벌컬리지에서 컬쳐&커뮤니케이션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워킹 홀리데이로 참가비 마련… 아타카마·고비사막 500㎞ 완주

 

 

칠레 아타카마 사막레이스 장면

 

최 씨는 이 서바이벌 레이스에 도전하기 위해 해외 농장에서 일을 했다. 코스별 참가비가 3300달러(한화 약 380만 원)에 달하기 때문. 마지막 코스인 남극마라톤은 참가비가 1만 1500달러(한화 약 1350만 원)에 이른다.

 

최 씨는 지난해 8월 호주 퍼스(Perth)의 브로콜리 농장에 취업했다. 원래는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일하던 다국적 농장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인만 뽑아서 쓴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워낙 일을 독하게 해서 그렇다고. 허리를 구부린 채 매일 10~11시간을 일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브로콜리가 사람 무릎 높이까지밖에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보증금(deposit)으로 300달러를 내고 일을 시작하는 데 3개월 이내에 그만두면 이 돈을 받지 못한다. 일이 워낙 고되다보니 열에 여덟은 중도에 농장을 떠난다고 한다. 선임자가 도중에 허리를 펴지 못 하게 하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일쑤였다. 최 씨는 이 농장에서 4개월간 일했다. 근로소득세 등을 제하고 1만 4천 달러를 벌 수 있었다.

 

그는 올해 세계 4대 사막을 모두 정복하겠다는 각오로 오지레이스를 시작했다. 첫 번째 도전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소금과 탄산칼슘이 말라붙은 험준한 소금사막 250㎞를 6박 7일간 종단해야 하는 코스였다. 그는 “지형이 울퉁불퉁해서 발에 붕대를 칭칭 감고 달렸다”고 했다.

 

 

발에 붕대를 칭칭 감고 250㎞ 코스를 종주했다.

 

하루에 40㎞가량을 돌파해야 하는 데 매 10㎞ 지점마다 체크포인트가 있다. 그곳에서 시간도 체크하고 물도 보충 받을 수 있다. 물은 배낭에 넣어 호스를 연결해 마시면서 달렸다. 1일 코스의 마지막 지점에는 1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텐트가 설치돼 있어 잠을 해결할 수 있다. 사이버텐트도 있어 인터넷도 할 수 있고, 모닥불에 물을 끓여 컵라면 같은 따뜻한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의료 천막에서는 간단한 진단과 진료도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250㎞를 완주하면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사실 완주보다 더 큰 당장의 기쁨은 피자와 콜라. 최 씨는 “이거 먹으려고 마지막 말에는 허파가 나올 정도로 뛰었다”고 했다. 마지막 날에는 호텔에서 굿바이 파티를 열어주는 데 시상식과 함께 종주 장면을 담은 영상을 관람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마감된다.

 

아타카마에서 생존에 성공한 최 씨는 두 번째 레이스인 중국 카슈가르의 고비사막 종단에 도전했다. 역시 지난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6박 7일의 일정이었다. 고비사막은 연강수량이 50㎜미만이고 돌과 자갈이 섞인 지형이다. 그는 “산이 많아 체력 소모가 다소 더 컸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는 10월과 11월 이집트 사하라사막과 남극 레이스에 나설 예정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과 가장 추운 얼음사막이다.

 

특히 남극은 칠레와 중국, 이집트 레이스를 모두 완주한 건각에게만 참가자격이 주어진다.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악천후에 크레바스(얼음틈새)라는 돌출 변수까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레이스이기 때문. 그는 “블리자드라는 강풍이 불어 닥치면 순식간에 영하 20~30도로 기온이 급락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사하라 레이스까지 마치면 남극 종주에도 자신감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 코스를 완주하고 받은 메달을 입으로 깨물고 있다.

 

◇그는 왜 도전에 목숨을 걸까?

 

최 씨에게 왜 위험한 도전에 집착하는지 물었다. 그는 “실패는 해도 절대 포기는 안 한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송촌고등학교 1학년 때 택견에 입문했다. 2학년 때는 ‘용인대학교총장기 전국 택견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런데 택견으로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사부(師父)와 결별하는 아픔을 겼었다.

 

그는 체육계 명문인 용인대 입학을 원했다. 하지만 그의 스승은 대전권 대학에 입학시켜 계속 운동을 가르치고 싶어 했던 것. 2002학년도 입시 때는 하필 특채 전형도 없었다. 그는 스승과의 관계를 끊고 용인대에 응시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재수 끝에 한남대 기독교학과에 입학했다.

 

 

중국 고비사막 레이스 장면

 

사부와의 이별, 입시 실패 등은 그를 한층 강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래서 군도 특전사에 하사로 입대해 중사로 마쳤다. 충북 증평의 13공수특전여단에서 4년 3개월 간 군복무를 했다. 특수작전 및 훈련을 60차례 이상 소화하고 밀리터리 강하도 40차례 이상이나 해냈다. 끈이나 칼 등 소리가 나지 않는 도구로 적을 살해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무성살상무기 교관이자 72대대 8중대 부팀장을 지냈다. 종합전술 여단장표창 등을 일곱 번이나 받았다.

 

택견을 포기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나약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온전히 군 복무 덕분이었다. 그는 “모든 훈련을 100% 다 참가했다”며 “열외하거나 뒤처지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군 생활을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가 그와 누이를 키웠다. 어머니는 노점에서 양말을 팔고, 식당을 운영하며 그렇게 남매를 키웠다. 오누이는 어머니와 함께 우유도 배달했다. 불우한 청소년기와 특전사 군 복무를 거치며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키운 셈이다.

 

대학생활도 일반 학생보다 두 배는 열심히 했다. 복수전공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실레스트 합창단, CC프레이즈(praise), 팀ET(Earth Traveler), 린튼글로벌컬리지 자전거동아리 등 동아리활동도 다양하게 참여했다. 특전사 부사관 복무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다지는 바탕이 됐다.

 

 

특전사 복무 시절 동료와 함께 촬영한 사진

 

NGO단체인 한국기아대책이 설립한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대학교에는 최초의 한국인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갔다. 아프리카에서 500시간의 봉사활동에 참여해 <조선일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세계일주도 시작했다. 한 번 출국에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도는 게 아니라 한 나라씩 집중적으로 여행한다. 그렇게 15개국을 다녀왔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았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 계획이다.

 

최 씨는 “지금은 성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이라며 “나이가 50~60세가 됐을 때 대학 강단에 서서 살아온 삶을 학생들에게 얘기해 주고 책도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