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ire sans dormir

조웅래 식 가치관경영 ‘여(慮) 신(信) 공(共)'

역발상(逆發想). 원래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생각이 떠오른다는 ‘발상’에 ‘거꾸로’라는 ‘역’이 더해져 만들어진 조어(造語)다. ‘발상’, 즉 원래 있는 생각과 반대로 생각해 보라는 의미다. 의례적인 사고를 탈피하라는 뜻으로도 자주 쓰인다. 뜻밖의 아이디어가 히트상품을 만들고 행정혁신을 이룬 사례가 속속 알려지면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필수덕목이 돼버렸다.

강연 중인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

 

반전의 삶에 대한 헌사 ‘역(逆) 창(創) 락(樂)’

 

 

역발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맥키스컴퍼니 조웅래(55) 회장이다. 술 만드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건강과 휴식을 떠들고 다니니 그보다 역설적인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04년이었다. 다니던 신문사에 3부작으로 향토 소주회사 선양의 30년 비사(祕史)를 탈고(脫稿)한 직후였다. 그는 무너져가던 소주회사의 인수자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창업영웅’으로 통하던 벤처기업 1세대, 그런 사람이 소주회사를 사들이다니! 가치관의 혼돈이었다.

‘왜?’라는 물음에 그는 “점유율이 낮으니 다시 높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정작 그와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를 한 건 2012년 9월초였다. 우리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관심이 컸을 때였다. 작정하고 사람들을 만났고 ‘CEO 리더십분석’이란 기획시리즈를 연재했다. 그는 내가 만난 첫 기업 CEO였다. 그리고 그의 리더십을 ‘역(逆) 창(創) 락(樂)’으로 정의했다.<2012년 9월 2일, 디트뉴스, “반전의 삶, 대중을 즐겁게 하라”> 뒤집어 생각하니(逆) 새로운 일이 비롯되고(創) 이로써 대중을 즐겁게(樂) 한 그의 삶에 대한 오마주(헌사)였다.

 

3년여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지난 5월 22일 오후 대전 서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2015년 서람이 자치대학’에서다. ‘역발상을 다시 역발상하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창조란 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호기심가지고 해보는 게 창조입니다.” 그의 강연이 시작됐다. 역(逆)으로부터 창(創)하고, 락(樂)으로 귀결된 그의 인생 이야기는 3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가 무미건조한 대전을 판매하는 최고의 도시마케터가 돼 있었다는 점이다.

 

KT 전화선을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활용

그는 공대를 나왔다. 대기업 엔지니어로 취업했지만 곧 그만뒀다.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서였다. 존재감 있게 일해 보려고 중소기업을 찾아갔지만 또 그만뒀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회사가 관심을 안 보여서다. 애초부터 그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전화기가 다이얼에서 버튼 식으로 바뀌고 유선망 보급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방에서 그의 눈에 운세 재떨이가 들어왔다. 불현 듯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전화 운세였다. 침대 밑에 기계를 놓고 음성으로 운세를 제공하는 700-8484(팔자팔자) 서비스를 시작했다. 1인 기업이었다. 단소 소리를 배경으로 인기 중국드라마 ‘포청천’의 성우가 운세를 알려줬다. 처음 성공을 맛봤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소리를 들려준다’는 발상의 전환은 삐삐, 휴대폰으로 이어졌다.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가 보급되면서부터다. 삐삐 사서함에 음악을 저장해 놓으면 목소리와 멜로디가 함께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휴대폰 벨소리와 컬러링도 선보였다. 크리스마스카드 대신 ‘700-5425’를 통해 캐럴송을 선물할 수도 있었다. 음악으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발상에 대중은 열광했다.

 

‘봉이 김선달’ 식 발상의 과학적 실현

 

조웅래 회장의 강의는 매번 '뻔뻔(Fun Fun)한 클래식'의 여주인공인 소프라노 정진옥의 '뻔뻔한' 가곡으로 시작된다.

 

‘5425’는 국내 모바일콘텐츠업체 부동의 1위였다. 브랜드 위상을 지키기 위해 연매출의 1.5배가 넘는 자금을 광고비로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신사업 구상에 골몰했다. 일종의 출구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유선망을 강력한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이용했지만 무선망은 개방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 더구나 스마트폰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사업을 찾고 있던 그의 눈에 대전‧충남의 향토소주회사인 ㈜선양이 들어왔다. “소리든 술이든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점유율이 낮으니 높일 수 있다고, 망해가니까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IT 벤처신화 주인공의 생뚱맞은 변신이었다.

 

당시 선양은 ‘은(銀) 충진 여과공법’과 국내 최초 알코올 21도의 ‘새찬’을 출시해 점유율 상승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대표이사(회장) 취임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찬’ 생산을 중단시켰다. 대신 ‘오투린’을 내놨다. ‘산소가 3배 많아 30분 먼저 깬다’는 광고 카피와 함께 등장해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는 제품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마시는 산소(O2)를 소주에 넣다니! 대동강 물 팔아먹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 아닌가! 그런데 ‘산소 용존 기술’이란 특허를 국내외에서 받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기술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적 학술지에도 소개됐다. 산소를 소주에 넣겠다는 발상도 그에게서 나왔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포항심층수를 마셨더니 술이 빨리 깼어요. 알고 보니 산소가 30피피엠(ppm) 들어가 있더라고요. 산이나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면 덜 취하고 빨리 깨는 이치와 같은 겁니다.” 그가 ‘유레카’를 외친 순간이었다.

 

소주회사를 에코힐링 기업으로

계족산 맨발 축제.

 

그는 서서히 자신의 ‘끼(氣)’를 회사 경영에 이식시켜나갔다. 대표적인 게 계족산 황톳길 조성.

 

 

어느 날 마산고 시절 자취집 친구들이 그를 만나러 왔다. 그는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내던 계족산으로 친구들을 데려갔다. 하이힐을 신고 있던 여자 친구에게는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줬다. 그리고는 맨발로 자갈이 섞인 산길을 다섯 시간이나 걸었다. 발이 성할 턱없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몸 전체가 후끈거리고 잠도 푹 잤다. ‘맨발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감탄과 함께 기발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발바닥에 모든 장기가 연결돼 있다고 하잖아요?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불면증, 우울증, 붓기, 생리불규칙 등에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발 벗기를 꺼려하죠. 발에 상처가 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신발을 벗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곧 산길의 자갈부터 걷어냈다. 그리고는 마사토를 깔았다. 거칠거칠한 게 촉감이 좋지 않았다. 색깔도 예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다시 황토를 깔았다. 붉은 색이 사람의 몸에 가장 빨리 반응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게 편안했다. 햇빛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느낌도 새로웠다. 낙엽이 떨어져 황토에 자국을 남기면 그대로 그림이 됐다. 그렇게 황토가 깔린 길이 14.5㎞나 된다.

 

이제는 사람들을 계족산으로 모이게 만드는 일만 남았다. 그는 사람들이 함께 걷고 뛰는 행사를 기획했다. 마사이마라톤. 하루에 3만보 이상을 맨발로 걷는 마사이족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연(ecology)과 치유(healing)를 합친 ‘에코힐링(Ecohealing)'이란 개념을 만들어 상표권까지 등록했다. 소주 만드는 회사가 ’에코힐링 기업‘이 된 것이다. IT 벤처신화 주인공의 변신만큼이나 짜릿한 반전이다.

 

‘익사이팅 대전’ 만들어 알린 도시마케터

 

황톳길 조성, 음악회, 축제 등의 콘텐츠가 가미되면서 계족산은 대전의 최고 명물이 됐다.

 

사람들이 많이 와 걷고 나면 황톳길이 굳어지기 마련이다. 비만 오면 흙이 쓸려나갔다. 그래서 새벽이면 황톳길을 뒤집고, 물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고용한 직원들이다. 그는 매일 새벽 계족산을 오르며 황톳길을 살펴본다. 언제부턴가 그에게 ‘황톳길 작업반장’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의 명함 한편, 캐리커처 아래에 이런 직함이 쓰여 있다.

 

 

맨발로 걷다가 그냥 헤어지는 게 싫었다. 언제나처럼 생각하나가 불현 듯 떠올랐다. ‘산속에 성악가와 피아노를 올려보자!’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아름다운 소프라노’ 정진옥을 단장으로 맥키스오페라단이 창설됐다. 숲속에 상설공연장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4월 둘째 주부터 10월말까지 매주 토, 일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뻔뻔(Fun Fun)한 클래식’을 만날 수 있다. 정장 입고 음악회 가는 2%의 국민이 아니라 티셔츠 차림의 98%를 위한 공연이다. 3대가 함께 깔깔거리며 즐기는 음악회다. 클래식과 뮤지컬, 연극, 개그가 어우러진.

 

산속음악회와 축제 등 문화콘텐츠가 가미되면서 계족산 황톳길은 대전의 최고 명물이 됐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3위’(한국관광공사), ‘5월에 꼭 가봐야 할 명소’(한국관광공사), ‘여행 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 ‘지방자치단체 e-Marketing Fair 여행 부분 대상’(G마켓) 등은 계족산의 위상을 증거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일을 사업가가 했으니 그는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계족산 황톳길은 세계 언론에도 잇따라 대서특필됐다. 세계 4대 뉴스통신사 중 하나인 AFP가 2008년 5월 맨발축제를 전 세계에 타전했고, 일본 NHK 등이 현장 스케치한 축제 영상을 주요 뉴스 시간에 내보냈다. 한국관광공사는 15개국 27개 해외지사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계족산 맨발축제를 소개했다. 무미건조한 대전이란 도시가 국내외에 이만큼 흥미진진한 도시로 각인된 적은 없었다. 2009년엔 아프리카 세이셸공화국 대통령이 황톳길을 맨발로 걸었고, 대전시장 답방 때 알다브라 육지거북, 일명 ‘세이셸 코끼리 거북’ 한 쌍을 선물했다. 이 세계적 희귀동물 한 쌍에는 무병(암컷 88세)과 장수(수컷 100세)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현재 대전동물원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계족산 황톳길이 대전의 명물이 되면서 덩달아 그도 바빠졌다. ‘역(逆) 창(創) 락(樂)’을 배우려는 대학과 공공기관, 기업 등이 그에게 특강을 청했다. 2007~2010년까지 64건이던 외부강의는 2011~2014년 225건으로 3.5배나 늘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국을 누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계족산과 대전을 홍보한다. ‘뻔뻔한 클래식’의 여주인공이 정말 뻔뻔하게 이태리 가곡을 들려주면, 그가 등장해 경상도 억양으로 대전을 이야기한다. 대전이 익사이팅해 지는 순간이다.

 

공유가치 창출이 기업 활동의 최우선

 

그는 전경련 초청으로 대기업 회장들 앞에서도 강연을 했다. “요즘 반 기업정서를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기업이 많다. 계산기가 아닌 가슴으로 사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이 남긴 강평이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CEO란 사람이 황토 깔고 관리하는 데 몰두하니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 자신도 힘들고 불안했다. 그 때마다 ‘단숨에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자위했다. 그러면서 1년, 2년, 그는 사람들이 계족산과 맨발에 열광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지금 그는 자신이 벌인 일에 열광하는 대중을 보며 짜릿함을 느낀다고 했다.

 

여배우를 모델로 쓰지 않아도, 판촉행사를 하지 않아도 산소 넣은 소주 ‘오투린’은 더 잘 팔렸다. 최근 수년 간 꾸준히 6~10%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업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흔히들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 중요하다고 한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고 남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를 사회적 가치 창출에 두고 동시에 이익도 취한다는 의미다. 그가 그렇게 한 기업인이다. 그는 소주회사의 최고경영자지만 원래 있던 계족산에 황톳길, 음악회, 축제 등 공공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해 제공했다. 소주 팔아 번 돈으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있는 돈으로 그렇게 하면서 소주를 팔았다는 얘기다.

 

조웅래 식 가치관경영 ‘여(慮) 신(信) 공(共)’

 

발상의 전환이 창조가 되고, 그것이 대중의 즐거움과 공유가치기가 되기까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신뢰를 얻는 인내가 필요했다.

 

그는 뒤집어 생각함으로써 창조하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역(逆) 창(創) 락(樂)’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생각, 창조, 즐거움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을지, 대중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기 위해 쉼 없이 궁리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배려심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꾸준하면 신뢰를 얻는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가 곧 제 풀에 꺾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계족산이 좋아서, 더 많은 사람이 올 때까지 오히려 더 생각하고 더 일을 벌였다. 행동에 변함이 없으니 사람들이 그의 진정성을 믿게 된 것이다.

 

맨발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처음엔 신발 벗기를 모두가 꺼렸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알아주니(慮) 신뢰가 쌓이고(信) 비로소 함께 하는(共) 문화가 형성된 셈이다. 발상의 전환이 창조가 되고, 그것이 대중의 즐거움과 공유가치기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여(慮) 신(信) 공(共)’, 조웅래 식 가치관경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