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더십분석② - 정상철 충남대 총장]通하기 위해 통 크게 경영한다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크게는 국가, 작게는 가정을 경영하는 데도 리더십이란 말을 쓴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지도력이나 통솔력 쯤 될 것이다. 리더는 조직이 향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은 왜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를 수긍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통의 리더십이란 말이 나오고, 구성원들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영향력도 발휘해야 한다. <디트뉴스>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 우리시대의 리더십을 발굴해 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유형은 어떤 것일까?<편집자 주>

 

 

그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할 줄 안다. 상대와 통(通)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법이 없다. 그래서 통(桶)이 크다는 소리를 듣느다. 통(通)하기 위해 통(桶) 크게 경영하는 게 정상철식 리더십이다.

 

총장선거 한 편의 반전드라마

 

2011년 11월 15일, 충남대학교는 제17대 총장선거를 치렀다. 모두 7명의 교수가 입후보한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그는 한 편의 반전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3위에 턱걸이해 2차 투표에 진출했다. 그만큼 ‘진성’ 지지자가 적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2차 투표에서 2위로 올라선 뒤 마지막 3차 투표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결선 상대는 지난 16대 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던 막강한 후보였다.

 

그렇게 충청권 거점국립대학의 ‘마지막’ 직선제 총장이 탄생했다. 정상철(58). 사람들은 그를 ‘소수파’ 총장이라고 불렀다.

 

2012년 6월 14일, 충남대는 사흘간 총장직선제 개선을 위한 학칙 개정 찬반투표를 벌였다. 그런데 투표 첫 날 교수회가 투표 거부를 선언했다. 교수회가 투표 거부라는 강수를 둔 데는 직원참여율이 최대 쟁점이 됐기 때문. 직원들은 총장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학칙개정을 묻는 투표인만큼 직원도 1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교수회는 종전 총장 선거 때처럼 전체 구성원의 12% 선에서 결정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교수가 자기 대학 총장도 못 뽑느냐’는 자괴감이 컸다. ‘민주화의 후퇴’이고 ‘권위주의로의 회귀’라는 정부를 향한 교수사회의 비판도 거셌다.

 

이런 논란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게 됐다. 14일 오후 6시 투표를 마감했더니 867명의 교수 중 707명이 참여해 81.6%의 투표율을 보인 것. 직원들은 357명 중 4명만이 기권해 98.9%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체 투표율 86.6%. 찬성율도 교수 77%, 직원 96%에 달했다. 전체 찬성률 83.4%. 압도적인 표차였다.

 

2012년 3월 30일, 정 총장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교육 선진화 방안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소수파’ 총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정부는 대학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각종 국비지원의 불이익을 주겠다며 직선제 폐지를 대학들에 압박하고 있었다. 정 총장은 총장 후보 시절 직선제 폐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말을 바꾼 셈이 됐다. MOU에 따라 충남대는 8월까지 학칙개정을 통해 총장직선제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는 구성원들에게 곧 사과했다.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총장 직선제 폐지는 피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임을 호소했다.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투표를 통해 학칙개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도 했다. 사실상 구성원이 반대하면 학칙개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 총장은 '소수파' 총장이다. 전국 국공립대학 휩쓴 총장직선제 폐지 이슈를 정공법으로 돌파함으로써 '소수파'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후 정 총장은 교수회, 총학생회, 재직동문회, 직원협의회, 총동창회, 학과장 간담회, 단과대학 순회간담회, 기관방문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그는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자. 교수는 참을 수 있지만 학생들은 졸업하면 끝”이라고 호소했다. 교과부의 대학선진화방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장학금, 취업지원, 국제교류 등 각종 국비지원 사업에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역량강화사업 탈락은 대학에 있어 IMF급 손실이다. 가령 40억 원의 국비만 지원받지 못해도 신입생 1000여 명(25.4%)의 1년 치 등록금을 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총동창회, 의대동창회, 의대학부모회, 농과대 교수, 총학생회, 대학원총학생회 등 10여개 그룹의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 묘한 소문이 퍼졌다. 정 총장이 학칙개정을 거쳐 연임을 시도하려 한다는 게 골자였다. 지난 3월 22일 열린 학무회의에서 먼저 말문을 연 건 정 총장 자신이었다. 진정성에 의심을 받으면 투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취임식에서 이미 연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인쇄물로 배포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자 대학이 법인화되면 초대 이사장을 맡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지금 학무회의 발언이 녹음되고 있느냐”고 직원에게 확인한 뒤 “이사장도 안 한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서야 대학의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학무회의에서 학칙개정을 의결했다.

 

 

교수회는 총장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한 학칙개정 찬반투표를 보이콧했지만 교수사회는 정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정 총장식 리더십의 승리였다.

 

총장직선제 폐지 이슈 정공법으로 돌파… '소수파' 한계 넘어

 

정 총장은 교수회의 요구대로 직접 비밀투표를 수용했다. 도박이었다. 이 한 판 승부에 대학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일부 대학이 투표결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온라인투표나 투표 자체를 치르지 않고 학무회의를 통해 학칙개정에 나서는 ‘꼼수’를 부렸지만 그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투표를 앞둔 지난 6월 5일, 그는 전체 교직원에게 이메일 서신을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학칙개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입을 수 있는 행·재정적 불이익에 따른 대학의 위기상황을 이해시켰다. 구조개혁중점추진대학에 지정되면 결국 타율적인 총장직선제 폐지와 단과대 및 학과 통·폐합, 입학정원 감축, 재정지원 제한,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금 회수, 교수 증원 배제, 각종 국책사업 탈락 등에 직면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이 구상하는 대학발전의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교수사회는 결국 정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학의 자율성 훼손’ 등을 비판하면서도 대학의 위기와 제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피해를 더 걱정했다. 그는 “교수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건 놀라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구성원들에게 총장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정말 대학에 위기가 온다는 정보를 진솔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진정성을 믿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충남대는 학칙개정을 위해 거점국립대학 중 처음으로 직접 비밀투표를 치렀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의사결정의 선례를 남겼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안다. 상대와 통(通)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통(桶)이 크다’는 소리를 듣는다. ‘통(通)하기 위해 통(桶) 크게 경영하는’ 게 정상철 리더십의 요체다.

 

그의 리더십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빛난다. 2007년 당시 총장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사퇴했다. 그는 기획처장이면서 공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유치위원장이었다. ‘국립대라고 로스쿨을 모두 승인하면 사립대의 반발을 산다. 본보기로 하나 정도는 탈락시켜야 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충남대를 겨냥한 얘기였다. 그는 충남대가 로스쿨을 유치해야 하는 당위성보다는 지역사회의 용서를 구하는 데 주력했다. 분위기가 반전됐고, 충남대는 100명 정원의 대형 로스쿨을 지정받았다.

 

‘통(通)·통(桶) 리더십’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생명공학관이 준공 후 2년이나 텅 비어 있었다. 서로 입주하려는 구성원 간 경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획처장이던 정 총장은 특별위원회를 구성, 교과부 기준을 참조해 교수1인당 면적 등을 산출했다. 그렇게 공간배정에 관한 원칙이 세워졌다. 이어 입주설명회를 열었고, 각 공간을 사용하려는 기관별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했다. 기준이 세워지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국 국립대학 최초로 무분규 등록금 협상을 타결한 것도 ‘통 크게 통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정 총장은 군기 센 의장대에서 투지를 배웠고, 청년시절 10여 개 직업을 오가며 통섭의 이치를 깨달았다.

 

군기 센 의장대서 투지 배우고 10개 직업 넘나들며 ‘통섭’의 이치 터득

 

그는 4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형제가 많다보니 그는 부모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장남은 크게 기대하고, 늦둥이는 귀염을 받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래서 소년은 늘 부모의 관심 밖에 있었다. 공부를 잘 해도 칭찬 한 번 듣지 못했고, 공부를 안 한다고 꾸지람을 듣지도 않았다. 형제들을 질투도 했지만, 곧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참고 인내하는 것을 배웠다.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지만 군대가 그를 바꿔 놨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71학번이다. 소위 ‘의식적인’ 청년들이 모이는 학과다. 그는 기꺼이 학생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다 분신사건을 목격했다.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도피하고 싶었다. 2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자원했다. 호적이 1년 늦은 데다 취학도 1년 빨랐던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의장대는 군기가 셌다. 점호가 끝나면 잠이 오질 않았다. 집합을 해서 기합 받고 한바탕 매질을 당하고서야 곤히 잠들 수 있었다. 싸움질도 배웠다. 그렇게 34개월을 거칠게 복무했다. 복학을 하고나니 비로소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번도 돈을 벌어야겠다, 출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던 그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결혼을 했다. 고교 3학년 때 교회에서 만난 2학년 여고생이었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생겼다. 그 때부터 도전이 시작됐다. 군에서 투지를 배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그는 충남대 전임강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4년간 10개의 일자리를 거쳤다.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기계류를 수입하는 업무를 봤다. 로비하는 일도 했는데, 대외협상력과 조정력이 요구됐다. 명절이면 선물을 돌려야 했다. 낯 뜨거운 짓을 못하는 성미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술도 많이 마셔야 했다. 9개월을 일하고서 계획도 없이 사표부터 냈다.

 

‘화이트컬러’는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았다. ‘블루컬러’ 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사회학과 출신이 일할 데가 없었다. 컴퓨터라는 기기가 처음 도입될 시점이었는데, 서울대 농대, 연세대 화학과, 성균관대 수학과 등을 졸업한 사람이 주로 이 일을 했다. 학원에서 7개월 과정의 컴퓨터프로그래밍 언어를 2개월 만에 속성으로 끝냈다. 중소기업 규모인 미국계 컴퓨터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시스템엔지니어로 2년 반을 일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퇴근 후에는 장사를 했다. 평화시장에 가서 보세신발을 새끼줄에 묶어 시내버스를 타고 합정동 상가아파트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리포트를 쓰고는 낮 동안 장사를 하던 아내와 교대로 물건을 팔았다. 학원에서 전산실장도 했고, 동시에 대학에서 시간강의도 했다.

 

그는 여러 직업을 넘나들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웠다. 인문계 출신이지만 이공계열 교수와도 말을 섞을 줄 안다. 학부에서는 비판적 성격이 강한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실용학문인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종교적으로도 자유롭다. 이선희 여사를 교회에서 만났지만, 아내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바람에 결혼식은 성당에서 했다. 어머니 덕분에 절도 자주 다녔다. 그의 모친은 직접 절을 짓기까지 했다. 그의 말투는 투박하다. 그런데도 얘기를 주고받다보면 감정이입이 된다. 그는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느낌을 공유하는 편”이라고 했다.

 

충남대 정보통신원장과 정보화기획단장을 지내면서는 시스템엔지니어로 일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cnu.ac.kr'이란 도메인 네임을 확보한 것도 그다. 이전에는 ’CNU‘란 이니셜을 충북대, 전남대 등 전국 5개 국립대학이 공동으로 썼다. 전국 최초로 충남대가 경상대학 전산실을 설립한 것도, 최저 예산으로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정 총장은 'CNU 선·후배 1대1 장학멘토링 모금 운동’을 주창하면서 자신의 지난해 연봉 전체를 먼저 기부했다. 취임 6개월만에 멘토링 장학금 15억, 발전기금 70억원을 돌파했다.

 

연봉 기부 '솔선수범'… 취임 6개월만에 발전기금 70억 돌파

 

정 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발전기금 1000억 원을 모금하겠다고 했다.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비아냥거렸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 “달성 가능한 걸 목표로 삼으면 이미 목표가 아니다. 달성이 어려운 목표를 잡아야 그걸 향해 뛰어갈 수 있지 않겠나.” 그는 이 목표를 위해 ‘CNU 선·후배 1대1 장학멘토링 모금 운동’을 주창했다.

 

첫 테이프를 끊은 이가 그다. 그는 지난해 연봉 8032만 2490원을 대학 측에 기탁했다. 그가 솔선수범하자 교내외에서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총장 취임 후 6개월 간 장학멘토링 기금만 400건 15억 원이 모아졌다. 전체 발전기금도 7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는 “1대 1일 장학멘토링 운동은 단순히 장학기금을 많이 모으자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직문화를 바꾼다는 데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10년만 이어지면 끈끈한 형태의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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