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ire sans dormir

반전의 삶 “대중을 즐겁게 하라” - 조웅래 선양 회장의 逆‧創‧樂

 

                                       '에코힐링'이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 조웅래 선양 회장.

 

어두침침한 실내조명. 벽에는 그림 몇 점이 걸려 있고 응접실 한 구석에는 기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짧은 머리에 청바지, 흰색 와이셔츠 차림새의 사내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흡사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했다.

 

조웅래(53). ‘에코힐링(Ecohealing)'이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자연(ecology)과 치유(healing)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요즘은 자연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 받는 ’에코힐링‘이란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상업적으로 함부로 쓰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 조 회장이 지난 2007년 6월 상표로 등록해 놓은 상태다.

 

‘창업 영웅’이 지방소주회사 인수… 묘한 반전과 함께 지역사회 등장

 

 

건강과 휴식을 파는 그는 역설적이게도 술을 만드는 회사의 최고경영자다. 한 때 ‘창업의 영웅’으로 불리던 그가 대전‧충남의 향토 소주 업체인 ㈜선양을 인수한 건 지난 2004년. 대기업에 밀려 텃밭을 다 내줄 위기에 처해 있던 지방의 소주회사 인수자가 벤처사업가라는 사실만으로 충격적이었다. 가치관의 혼돈이랄까 묘한 반전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인 ㈜5425는 물론 가족을 모두 데리고 대전으로 이사했다. 그리고는 충청도 사람이 됐다. 5425에 근무하던 직원들도 덩달아 대전시민이 됐다. 뭔가 일을 꾸며도 단단히 꾸밀 사람으로 느껴졌다. ‘산소 넣은 소주’라는 기가 막힌 생각을 실천에 옮기더니 2년 후에는 자갈이 섞인 산길에 황토를 깔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일을 저지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맨발로 뛰는 마사이마라톤을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2010년부터는 맨발축제로 개념을 확장했다. 해발 423m의 평범한 계족산이 그의 아이디어 하나로 대전을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지난해 5월 15일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이 계족산을 찾았다. 그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차가운 진흙을 밟으니 자연의 에너지가 그대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한 사람들과 정이 드니 기분이 좋아져서 절로 흥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를 “한국만의 매력인 기(氣), 흥(興), 정(情)의 에너지”라고 정의했다. 한국의 정취를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사장이 다녀간 후 계족산 맨발축제는 세계에 알려졌다. 관광공사가 4개 국어로 제작해 15개국 27개 해외지사에 비치한 홍보책자에 대한민국 대표축제 중 하나로 소개된 것. 이 책자는 국내 MICE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육성을 위해 제작됐다. 내세울만한 천혜의 자연환경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된 축제가 맨발축제다. 세상에 이런 축제가 또 있을까? 축제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대전에 있어선 더욱 그렇다.

 

이런 족적 때문인지 조웅래하면 ‘역발상(逆發想)’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거울에 사물이 역으로 비치듯 거꾸로 생각해 보는 걸 역발상이라고 한다. 역발상은 원래 사전에 없던 말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뒤집어 봤더니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정도가 될 것이다. 새로운 생각은 창조(創造)로 이어진다. 그는 뒤집어 생각해보고 새로운 일을 꾸미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역(逆)으로부터 창(創)하는 게 그의 인생살이인 셈이다. 그런데 그의 역(逆)과 창(創)은 대중을 즐겁게(樂) 한다. 그래서 조웅래 식 경영은 역(逆)‧창(創)‧락(樂)으로 귀결된다.

 

뒤집어 생각하니(逆) 새로운 일이 비롯되고(創) 이로써 대중을 즐겁게(樂) 하리라

 

 

그는 1959년 경남 함안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워낙 가난한 살림이었던 데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대학진학은 꿈도 안 꿨다. 농사짓고 꼴을 베 소에게 먹이는 건 기본이었다. 겨울이면 땔감을 구하러 리어카를 끌고 다녔고, 인분을 퍼 보리 짚과 섞어 퇴비도 만들었다. 그는 “공부를 못한다느니 잘하라느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속을 받은 일이 없고, 좌충우돌로 살았던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머리가 좋은 편이었는지 대충하는 공부였지만 명문 마산고에 합격했다. 술 마시고 담배 피고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경북대 전자공학과에도 붙었다. 그는 “공부를 안 한 거지 못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78학번이니 시위가 끊이지 않을 때였다. 데모에 참여했다가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맞았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핑계로 자원입대했다. 백골부대에 배치됐는데 전공 덕분에 전화선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가설병(架設兵)의 소임이 맡겨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삼성반도체와 LG정보통신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끝날지도 모를 그의 인생을 바꾼 건 불현듯 떠오른 어떤 생각이었다. 전화기가 다이얼식에서 버튼 식으로 바뀌었을 때였는데 마침 한국통신에서 유선망을 개방해줬다. ‘아이템만 있으면 망하지는 않겠다!’

 

당장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부속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1992년 자본금 2천만 원으로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요즘말로 하면 ‘1인 창조기업’이다. 유선전화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사무실을 마련할 돈이 없어 아이의 침대 밑에 장비를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방에서 사람을 기다리다 100원을 넣고 띠 운세를 봤다. ‘전화로 운세를 볼 수 있다면…’.

 

그는 ‘8484(팔자팔자)’라는 번호에, 선풍적 인기를 끌던 중국 드라마 포청천,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남‧여 성우를 캐스팅했다. 배경으로 피리, 단소 소리를 넣어 점집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창업 1년 만에 1억 원을 벌었다. 대박이었다. 그 후 ARS 보드도 직접 만들었다. 국산 1호였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술에 찌들어 살았다. ‘이러다간 폐인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음악 메시지 사업을 시작했다.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가 보급돼 있던 시절이다. 삐삐 사서함에 음악을 저장해 놓으면 목소리와 멜로디가 함께 나오는 아이템이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도, 이메일도 없던 때였다. 크리스마스카드 대신 ‘700-5425’를 통해 캐럴송을 선물하는 광고를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이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음악으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한다는 의미였다. 상대방에게 음악으로 나를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의 등장에 대중은 환호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5425’는 국내 최대의 모바일콘텐츠 업체가 됐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도 전에 ‘컬러링’의 개념을 개발한 게 그 원동력이다. 공격적인 ‘브랜드 마케팅’은 업계 난립으로 이른바 ‘700업체’가 하나 둘 쓰러지는 와중에서도 5425를 지탱시켜 줬다. IMF 외환위기 이후 연매출의 1.5배가 넘는 자금을 광고비로 쏟아 부었을 정도. 이 때문에 30~40대라면 누구나 ‘5425’를 기억하고 있다.

 

잘 나가는 IT기업이 많고 많은 제조업체 중 왜 주류회사를, 그것도 경영난에 허덕이던 지방소주회사를 합병했을까? 그는 2000년대 초반 무선인터넷 사업에 진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무선망 개방이 이뤄지지 않았다. 제조업으로 눈을 돌린 직접적인 이유다.

 

그는 “5425는 불특정 대중이 타깃이다. 소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걸 팔아봤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회사가 넘어갈 정도로 어려웠으니 역으로 생각하면 성장가능성이 많은 것 아니냐”고도 했다.

 

“산소 마시면 술 빨리 깨”… 하이힐 신은 女親 신발 벗어주고 맨발예찬가 돼

 

 

                              짧은 머리에 청바지, 흰색 남방 차림새가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했다.

 

그는 선양을 인수하자마자 산소소주를 개발했다. 당시 선양의 대표 브랜드는 은(銀)처리여과공법으로 만든 ‘새찬'이었다. 그가 어느 날 술을 마시고 포항심층수를 마셨더니 술이 빨리 깨더란다. 알아봤더니 산소가 30피피엠(ppm) 들어가 있었다. 그는 “산이나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면 덜 취하고 빨리 깬다. 산소를 많이 마셔서 그렇다”고 했다. ‘소주에 산소를 넣자’는 발상이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에 특허를 낸 산소소주 ‘오투린(O2린)’은 그렇게 태어났다.

 

소주회사 선양이 에코힐링 기업으로 거듭난 사연도 재밌다. 그가 대전으로 이사 오고 대구에서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간혹 놀러왔다. 그 때마다 그는 도시락을 싸서 계족산 트래킹을 즐겼다. 2006년 4월 고교시절 자취할 때 친하게 지내던 여자친구 2명이 조 회장을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계족산에 갔는데, 하필이면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동행했던 남자친구와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었다.

 

자갈이 섞인 산길을 5시간이나 걸었더니 발이 성할 리 없었다. 그런데 몸 전체가 후끈거리고 잠도 푹 잤다. 이런 상태가 2~3일 동안 계속됐다. 조 회장은 널리 알려진 마라톤 마니아다. 42.195㎞ 풀코스를 40차례나 완주했다. 최근 기록은 경주벚꽃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30분 16초. 맨발의 효험을 알게 된 그는 이때부터 맨발로 뛰었다. 신발 신고 뛸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이런 걸 나 혼자 할 순 없지!’

 

지금은 조 회장 덕분에 맨발걷기가 유행처럼 됐지만 6년 전만 해도 정신 나갔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었다. 맨발로 걷기를 거리끼는 보다 근본적 이유는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이 문제만 해소하면 된다!’ 처음엔 마사토를 깔았다. 맨발걷기는 신발을 벗고 대지의 느낌을 받는 촉각이 중요하다. 거칠었다. 여기저기에서 황토를 공수해왔다. 느낌이 보드라우면서 편했다. 불그스름한 색깔은 따뜻하면서도 활기찬 기분이 들게 했다. 조 회장은 “이게 치유의 개념”이라고 했다.

 

그는 “마사이족은 육식을 주로 하는데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일반인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루에 20㎞ 정도를 걷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미지를 차용해 마사이마라톤이란 브랜드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황토가 깔린 14.5㎞ 구간을 시간제한 없이 걷고 뛰었다. 숲길 사이사이에서는 연주가 이뤄졌다. 그동안 선양이 매년 전국에서 구해온 황토 2만여 톤을 쏟아 붓고 보수와 정비를 하면서 들어간 돈은 40억 원이나 된다.

 

천혜의 자연환경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대전 대표축제 만들어

 

 

                               조 회장은 널리 알려진 마라톤 마니아다. 42.195㎞ 풀코스를 무려 40차례나 완주했다.

 

대중이 즐거워하자 마사이마라톤은 맨발축제로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 37개국 1000여 명의 외국인을 비롯해 1만 2000여 명이 다녀갔다. 참가비는 저소득 가정 및 다문화 가정 후원금으로 쓰인다. 10~20대는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4월부터 10월까지 주말마다 맨발 도장 찍기, 황토머드팩 체험 등 상시이벤트가 열린다.

 

2007년부터 월 1회 무료로 개최했던 숲속음악회는 올해부터 매주 토‧일요일 오후 4시 정기 상설무대로 운영된다. 선양 에코페라공연단의 ‘뻔뻔(fun fun)한 클래식’. 클래식과 뮤지컬, 연극, 개그가 한데 어우러져 3대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지향하고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좌우명이다. 그는 “제대로 미치려면 확신이 중요하다. 흥미가 있어야 미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사업하는 21년간 아침이 기다려질 때가 가장 좋았고 지금도 그렇다. 뭔가 설레고 할 게 많아야 아침이 기다려진다. 뭔가 미쳐있어야 할 게 많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맨발에 미쳐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30분 택시를 타고 계족산에 간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고 걷는다. 그는 대중에게 함께 미치자고 한다. 그래서 황톳길 확산에 나서고 있다. 2009년 충남 아산 신정호를 시작으로 대전 둔산동 크로바아파트 단지, 대덕연구단지 한국연구재단, 천안 부엉공원 및 아산 용곡공원, 대전 갈마동 경성큰마을아파트 단지 등 도심 속에 황톳길을 조성했다.

 

그는 4년 연구개발 끝에 ‘맥키스(MACKISS)'라는 화이트 위스키를 출시했다. 도수가 40도가 아닌 21도다. '이지(easy) 칵테일’을 지향했다. “주스 같은 음료와 섞어 마시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주폭(酒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그의 발상에서 나온 술이다. 2009년 지경부가 대한민국 차세대 브랜드로 선정했고, 2012대전세계조리사대회 공식만찬 건배주로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