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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ire sans dormir

스물일곱 자폐아 아들을 둔 박성효 대전시장 부부의 행복

보지 않던 여성잡지에 내가 사는 도시, 대전의 박성효 시장 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걸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관심 있게 봤더니 스토리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소 긴 이야기지만 소개해봅니다.

          박성효 시장과 그의 아내 백기영 여사.

대전에 살지 않는 사람, 혹은 대전에 사는 사람이라도 대전시장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전시의 눈부신 변화는 직접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젊은 박성효 시장이 취임한 이후 도시 숲과 하천을 중심으로 정말 대전이 많이 변했습니다. 기업유치 하나 제대로 못했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각종 경제지표면에서도 대전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이런 박성효 시장에게도 아픔이 있습니다. 아마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얘기죠. 박 시장에게는 스물 일곱 난 아들이 있습니다. 그는 자폐성 장애를 안고 사는 청년이죠. 아내의 해산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장애를 얻게 된 아들.. 특별히 남의 마음 아프게 한 일 없고, 남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던 박 시장으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불교신자이신 박 시장의 어머니는 아들이 교회에 다니는 여자를 데려오자 극심하게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둘은 결혼을 하고, 박 시장이 고교시절 사용하던 조그만 방에 신접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염려하시던 일이 벌어진 것이죠. 하지만 박 시장의 시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죄인처럼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아내 백기영 여사의 눈물을 봤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박 시장의 회고입니다.
공무원 생활 때부터 제가 유독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기울이자 많은 이들이 장애를 안고 사는 아들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선입견을 갖더군요. 참 불편했어요. 남들보다 불편한 몸을 가진 아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렵고 힘든 일도 많은 아들이지만 장애인이라고 규정짓고 그에 맞춰 살아가게 한다면 우리 아들이 더 불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희 부부에게 아들은 장애인이 아니에요. 가족 중 키도 가장 크고, 가장 밝고 순수한 청년으로 자라줬거든요. 어쩌면 장애는 또 다른 능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 1학년 시절, 친구의 소개로 처음만난 아내 백기영 여사는 당시 한남대 영어교육학과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이후 박 시장이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연수를 받던 시절, 다른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는데 거기서 백 여사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풋풋한 여학생에서 한층 성숙한 여성으로 변한 모습에서 박 시장은 '인연'을 느끼고 사랑을 키웠다고 합니다.

다음은 백 여사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남편은 어떤 일에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끝을 봐야 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이제는 어느 정도 면역이 돼 뭐라고 하기 보다는 지켜보고 응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게다가 시장 부인으로서 나름의 역할도 있잖아요. 남편이 주로 소외된 사람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듯 저 또한 많은 봉사와 위문을 다녀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고보니 어느새 남편의 일과 마음을 공감하는 조력자가 됐네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아내. 한 때는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 정도로 장애를 안고 사는 아들 걱정에 큰 아픔을 가져야 했습니다. 영화 '말아톤'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조차 집 주위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하나, 박 시장 부부는 자신보다 더 아픈 어려운 사람과 소외된 계층과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자신의 아들마저 따뜻하게 품어줄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UN환경계획의 70억 나무심기 프로젝트에서 대한민국의 기여도는 세계 10위, 대전은 우리나라에서 1위입니다. 박 시장이 추진해온 3천만 그루 나무심기 운동 덕분입니다. 그가 시장에 취임한 후 지금까지 600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고, 공원이 조성됐습니다. 사람들은 결혼기념 나무를, 출산 기념나무를, 스승존경 나무를 심었고,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꿈나무를 심었습니다. 갑천호수공원과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철거한 자리에 조성하는 목척교 르네상스 등 하천이 대변신한 것도 그의 추진력 덕분입니다.

빈곤을 풍요로, 소외를 공존으로 세상을 살맛나게 바꾸려는 그의 꿈도 진행형입니다. 대전의 여러 정책 영역을 특별히 소외된 지역에 집중하는 무지개프로젝트는 용산참사를 겪은 서울은 물론 부산, 울산, 대구... 미국, 프랑스, 호주 등 선진국에서도 배워갔습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 재학시절을 제외하고는 대전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대전 토박이, 박성효. 그가 추구하는 공존의 가치, 녹색의 가치..이런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런 가치를 잃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는 일이 된 것이죠.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막걸리를 같이 마셔주고, 바둑을 같이 둬 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함께 모내기를 하고 벼베기를 해 주는 지도자를 원한다. 박성효 시장이 그런 지도자라는 생각입니다.

 <출처 QUEEN-200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