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를 끌어온 경월과의 '그린' 상표권 분쟁으로 그 어떤 소주 회사도 '그린'이란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선양은 자사의 최대 히트 상품이었던 '그린' 대신 새 브랜드인 '새찬'을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2001년 4월 출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린 상표권 분쟁'으로 급하게 출시된 선양새찬 - 네이버 이미지 검색
더군다나 2001년 7월 주류구매전용카드 시행을 앞두고 중간 도매상들로부터 외상 물량이 평상시의 3배 이상으로 폭증, 철야작업에도 불구하고 선양은 이 물량을 모두 공급할 수 없었지요. 이로 인해 경쟁사 제품이 그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충청권 시장을 나름대로 수성해 온 선양으로선 서서히 틈새를 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었습니다.
이후 선양의 시장 점유율은 2002년 49.7%, 2003년 45.7% 등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 2004년에는 42%까지 떨어졌습니다.
선양도 나름대로 주질(酒質)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며 점유율 반전을 도모했으나, 이미 뚫려 버린 틈새는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선양으로선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시장을 전부 내줄 수 없었던 선양은 2003년 말 신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선양의 연구실. 이 곳에서 '은(銀)충진여과공법'으로 만들어진 21도의 새로운 선양새찬이 출시됐다. - 충청투데이 DB
새로워진 선양 새찬은 선양 연구팀의 개가였습니다. 바로 '은(銀)충진여과공법'으로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소주이자 알코올 도수 21도 시대를 알린 신호탄이기도 했지요.
'은'이 인체에 유익하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 알려진 사실. 이를 소주에 적용하니 맛이 한결 부드럽고 순해졌으며, 임상실험 결과 숙취도 훨씬 덜하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선양은 2003년 9월 이 공법에 대한 특허를 취득, 전국 10개 소주 회사 중 오로지 선양만이 은소주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銀)충진여과공법'으로 재탄생한 '선양 새찬'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선양 새찬의 은소주 이후 '녹차소주' 등 소주에도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알코올 도수도 21도가 정착됐습니다. 그러나 한 번 추락한 선양의 시장 점유율은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양의 재반격도 한층 공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대 경쟁사인 진로의 부사장을 역임했던 김광식 신임 사장이 선양의 새 사령탑으로 2004년 9월 21일 취임했습니다. 전 직원이 일과가 끝나면 거리로 나가 판촉에 매달렸습니다. 선양 창사 후 이 같은 분위기는 없었지요.
진로의 부사장에서 선양의 새 사령탑으로 변신한 김광식 사장
이어 선양은 1년여 전부터 준비해 온 선양 새찬 리뉴얼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리뉴얼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선양은 1만 2500여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를 실시했다고 합니. 최초 40%이던 선호도를 지속적인 주질 개선 과정을 거쳐 70%까지 끌어올리고 나서야 제품에 '선양 새찬' 상표를 달았지요.
김광식 사장도 제품 출시 전 연구원들과 밤샘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김 사장이 술의 조미료격인 증발잔사(과당·스테비오사이드·소금·산미료 등)를 대폭 줄이는 걸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찬반 논쟁 끝에 결국 증발잔사를 줄이니 '걸쭉한 맛'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결 '담백한 맛'이 나왔다네요.
알코올 도수도 다시 0.5도 낮췄습니다. 23도, 21도 등 소주의 저도주화를 주도한 선양이 다시 저돌적인 공세로 나선 겁니다.
은(銀) 투입량도 기존 새찬 소주의 두 배로 늘렸습니다. 알코올 도수를 1도 이상 낮추면 우리의 미각이 이를 감각할 수 있지만, 0.5도 차이는 거의 느낄 수 없지요. 2차로 섞어서 과음만 하지 않는다면 숙취가 없을 만큼 부드럽고 순한 맛은 알코올 도수를 0.5도만 낮추고 은 투입량을 2배로 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4대 6 정도로 선호도가 떨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증발잔사나 은 투입량을 조절하고, 알코올 도수도 낮춰 보고 하면서 선호도가 높아졌을 때 '이젠 됐다' 한 겁니다." 김광식 사장의 회고입니다.
리뉴얼 선양 새찬은 디자인도 새로워졌습니다. '선양'이란 상호를 브랜드명인 '새찬'과 거의 동등하게 글자 크기를 키웠지요.
김광식 사장 취임 후 리뉴얼된 선양새찬
이는 주질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했습니다. 글씨체도 젊은층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로 결정했습니다. 라벨에 다소 잡다하게 인쇄돼 있던 광고 문구를 과감히 버리고 여백의 미도 최대화했지요. 직장인이나 중년층에 비해 절대적으로 약세인 대학생층을 겨냥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새찬'이란 이름에는 '새롭고 찬란하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다음 편은 <대전사랑 오투린 이야기(4)>의 마지막 편 '에코힐링 마케팅과 조웅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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