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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 Talking

그대에게 이름이 불리워야 비로소 살 수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은 추석날 저녁,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다.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관례적 행사지만 나도 이 순간을 너무 좋아한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영화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서 가상의 인물인 호위무사 '무명'이 등장한다.
명성황후, 한때 '민비'라는 낮춤말로 불려지기도 했던 민자영이 황후의 진짜 이름인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그녀 자영, 영화는 자영이 아비가 없다는 이유로 왕후로 간택되고나서 뱃사공으로 위장한 불세출의 자객 '무명'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영과 무명의 만남. 이날의 만남은 사실 첫 만남이 아니다. 무명은 그녀를 멀찌감치서 처음 봤다.

무명, 대원군의 가톨릭 박해로 어미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 무명의 앞으로 왕후로 간택됐다는 자영이 지나간다. 자영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 어머니였다. 그래서 무명에게 있어 "어머니,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나 자영, 그대만은 지키겠다"가 되는 거겠죠. 무명에게 내려진 이 명령은 절대적이다.

민자영이 왕후가 되는 날.

대원군의 암살시도. 무명은 자영을 데리고 궁을 탈출한다.
그리고 동굴에서의 하룻밤. 이날 무명은 자영을 품에 안는다. 추워 떨고 있는 한 마리 강아지를 품에 안은 듯. 그리고 무명은 "마마"가 아니라 "자영"을 부른다. "엄마"라고 부르듯. 천한 것과 고귀한 것간의 동굴신에는 그래서 섹스신이 없다. 아마 섹스신이 있었다면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었겠지. 그리고 동굴이란 배경... 추위에 떨던 자영은 무명의 품안에서 새근새근 잘도 잤다. 동굴은 무명에게 있어 어머니의 자궁이요, 어머니의 품이다. 무명에게 자영이 있어 동굴이 어머니의 자궁이자 품이되는 것이다.
2일인가, 3일인가 자영이 궁을 떠나 있는 동안, 그것도 호위무사와 함께 단 둘이 떠나 있었다는 사실이 꼬투리가 돼 고종은 무명을 궁에서 방출한다.
고종의 타오르는 질투와 자영과의 베드신.
무명과의 동굴신과 겹치면서 이 영화의 명장면이 된다. 자영은 쾌락의 신음을 내뱉지만 무명이 그들 가운데 있는 것 같다. 고종은 왠지 어린아이같다.
그리고 고종의 거래. 자영은 무명에게 고종의 거래를 전달한다.
고종의 거래 제안을 수락한 무명. 그와 대원군의 대군과의 1대 1천의 싸움. 무명의 승리아닌 승리였다.
 無明, 빛이 없다는 뜻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자영의 등장으로 이름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 이름은 자영의 죽음으로만이 불릴 수 있는 이름이다.
일본의 천인공노할 궁 침탈. 그리고 자영의 죽음.
대원군은 자신의 무사에게 황후를 지킬 것을 명한다.
그리고 무사의 죽음. 다시 1대 1천의 싸움이 시작됐다.
중과부적. 무명은 떼로 몰려드는 일본 칼잡이들을 당해낼 수 없다.
그러나 무명은 쓰러지지 않았다. 칼로 자신의 발등을 찍어 자신의 몸을 지탱시킨 채 죽음을 맞이 한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너희들은 나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영은 이런 말을 남기고 최후를 맞이한다. 이미연이 이 말을 했을 때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영은 무명을 안고 죽었다. 무명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고는...
비로소 무명이  有明이 됐다. 무명은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자신을 던지고 빛을 찾았다.
무명에게 있어 비록 어머니의 죽음은 지키지 못했지만, 자영의 죽음은 지킨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지만, 자영의 죽음 앞에서 무명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이로써 그는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이다.

초컬릿을 처음 맛보는 자영. 달콤해서 입에 넣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녹아버리는 초컬릿. 초컬릿은 무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품고 싶지만 품을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한다. 프랑스어로 '쇼콜라'. 초컬릿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의 단어. 무명은 자영에게 있어 쇼콜라다./사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공식 사이트 http://www.minjayo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