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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 Talking

왕위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한편의 정신분석드라마 '킹스스피치'

영화 <킹스스피치>는 정신분석 치료의 전형을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영국 왕 조지 5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버티(알버트)는 해군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재목이지만 심한 말더듬이입니다.

아버지 조지5세를 대신해 왕자 전하이자 공작인 자신이 연설문을 낭독해야 하지만 번번히 말을 더듬습니다.

이를 치료하려하지만 번번이 실패하죠. 말더듬는 증상이 있다면 그 심리적 원인이 있을 텐데 버티가 이를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혀의 운동성 등 신체적인 문제로만 치부합니다.


아마추어 배우였고, 전쟁으로 말을 잃은 군인들과 대화하며 언어치료를 하게 된 라이널 로그는 마치 프로이트처럼 버티를 대합니다.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버티의 성장과정을 들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싶었던 거죠.

하지만 버티는 자신이 말더듬이 증상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심하게, 반복적으로 저항할 뿐입니다.

버티가 말 더듬는 증상을 보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위치, 즉 왕위를 물려받는 건 형 데이빗(훗날 에드워드 8세)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왕위에 오르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합니다.

요컨대 버티에게는 왕의 위치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이 있는 것이죠. 그게 말더듬는 증상으로 나타난 걸로 보여집니다.



조지5세의 죽음으로 왕위후계자 1순위인 형 데이빗이 에드워드8세로 등극하지만, 세기의 스캔들로 인해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버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지5세가 될 운명인 것이죠.


치료사 라이널 로그는 이런 버티의 운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티가 스스로 왕위를 욕망하면서, 그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죠. 그런 라이널에 버티가 저항하면서 치료는 중단된 듯 보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해법을 제시하는 건 바로 라이널의 부인입니다.


로그부인은 "버티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할 사람인데..."라며 푸념하는 남편 라이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죠".

생뚱맞게도 로그 부인이 버티와 일면식도 없었고, 그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버티가 왕위를 원하지도 않으며, 왕위가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왕위논쟁으로 불거진 버티와 라이널의 관계는 버티가 라이널을 찾아오면서, 그리고 자신의 개인 치료사로 라이널을 지속적으로 고용하면서 회복됩니다.

그리고 조지6세는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해야 합니다. 말 더듬이 조지 6세가 과연 영국 국민과 50여 대영제국 국민들에게 세계평화를 위한 나치에 대한 저항을 잘 호소할 수 있을까요?


그건 이제 전적으로 버티의 몫입니다. 왕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려야하는 것은 바로 버티 본인이니까요. 사실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왕이 되고 싶었다는 욕망에 대한 두려움이지만 말입니다.


영화 <킹스스피치>는 버티의 성장과정을 통해 그가 왜 말 더듬이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을 스스로 분석함으로써만이 극복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건 조지6세의 평민 친구인 라이널 덕분이겠지만요...

"버티, 당신은 왕이 되고 싶었잖아!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잖아!" 버티가 이런 무의식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을 겁니다. 버티가 아니라 조지6세가 된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