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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ire sans dormir

토속신앙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담은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명성황후의 염원

그리스에 올림푸스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계룡산이 있습니다. 계룡산은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성지(聖地 )입니다. 845.6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계룡산에는 풍수적인 특별함이 있습니다.

 계룡산 연천봉. 풍수적으로 연천봉과 등운암 사이가 우리나라에서 삼태극의 정기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사진 출처=계룡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계룡산의 특별함은 우리나라 산이 대개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데 반해 이 산은 평야 지대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산이란 것. 그래서 계룡산을 '특립(特立)'이라고 합니다. '특별하게 섰다'는 의미이죠. 계룡산을 중심으로 대둔산, 덕유산, 속리산이 삼태극을 이루는데 그 중에서도 계룡산 연천봉과 등운암 사이는 삼태극의 정기가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연천봉에 올라 제를 올렸다고 해서 유명하기도 합니다. 연천봉은 하늘과 이어진 곳과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연천봉이 바라 보이는 곳에 신원사가 있습니다. 갑사나 동학사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는 절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가장 고즈넉한 사찰 중 하나가 됐습니다.

                           신원사 대웅전(사진 출처=한국관광공사)

신원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성계가 꿈을 풀이하기 위해 해몽을 잘 한다는 팥거리 할머니를 찾아왔는데, 이 할머니가 대뜸 절을 하고는 '당신은 왕이 될 존귀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성계는 천기를 누설한 할머니를 죽입니다. 그리고 이 할머니가 계룡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죠.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뒤 할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신혼사(神魂寺)'를 지었습니다. 말 그대로 혼을 위로하는 절을 세운 것이죠. 그러다가 고종황제 때 절을 다시 지으면서 '신원사(新元寺)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신원사에는 하늘과 땅에 제를 올리는 중악단(中嶽壇)이 있습니다.

                          중악단

중악단은 1394년 처음에 지어졌다가 고종 16년인 1879년 월주화산에 의해 중수됐다고 합니다. 원래는 산신제를 지내던 계룡단이었다가, 고종황제가 '제국 건설'을 위해 묘향산에 상악단(嶽壇)을, 지리산에 '하악단(嶽壇)'을 각각 설치하면서 충청도 계룡산에는 중()악단을 설치한 겁니다. '제국'을 만들려면 '오악단'을 설치해야 하는데 고종황제가 몰래 만드느라 삼악단까지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중악단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꿈꾸던 황제국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중악단은 제국의 꿈, 새 시대에 대한 희망, 고종과 명성황후의 염원이 담긴 곳입니다. 중악단 지붕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에 돌출해 있는게 보이실 겁니다. 바로 '어처구니'들입니다. '어처구니'는 잡상을 말하는데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궁궐지붕에나 올리던 것이라고 합니다. 왕실이 지었기 때문에 궁궐목수들까지 참여했다고 합니다. 중악단의 구조도 궁궐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2곳의 출입문을 거쳐야만 본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대문과 중문 사이에는 조그만 마당이 있어 엄숙함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본전에는 산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원래는 할머니였다가 지금은 단군을 연상시키는 할아버지로 바뀌어 있습니다.

 중악단 대문을 지나 중문으로 지나가기 전 조그만 마당에는 신도(신이 걸어가는 길)가 깔려 있습니다.

중악단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제국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에 토속신앙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대전의 '오렌지나인'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계룡산 중악단 그리고... 명성황후'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타리는 박성효 시장이 취임한 후 영상산업 진흥을 위해 설립한 대전문화산업진흥원이 지역문화다큐멘터리 콘텐츠 제작 지원을 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