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중앙데파트가 폭파방식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다. <photographer YKJ>
지난해 8월 1일 대전 1, 2호 백화점인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을 복원하기 위한 도시계획시설사업이 고시됐습니다. 그 후 홍명상가 상인 300여 명의 투쟁 이야기는 시작됐습니다. 그 해 10월 중앙데파트가 폭파방식으로 수 초만에 폭삭 주저앉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바라봐야 했던 홍명상가 상인들의 가슴은 철렁했습니다. "아! 우리의 터전도 저 꼴이 나고 말겠지..."
홍명상가 상인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시청광장에서는 연일 "대전시장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보상을 위한 물건조사를 위해 관계공무원들이 홍명상가를 찾았을 때는 물리력으로 막았습니다. 심지어는 주먹다짐이 있었고, 공무원들은 상인대표들을 공무집행방해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중앙데파트에 이어 홍명상가까지 철거하고, 대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대전시와 홍명상가 상인들의 반목과 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지루한 공방은 1년 여가 지속됐습니다. 상인들은 언젠가부터 도심 속 흉물이 돼 버린 홍명상가가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된 것도 알았습니다. 하천을 메우고, 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세워진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대전천을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대상이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명상가는 자식들을 미래의 동량으로 키우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봉양하고, 동생 학비를 마련해 주던 곳이었습니다. 터전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 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홍명상가 상인들은 일부는 홍명프리존(옛 대전코아)으로, 역전 지하상가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행히 대전시가 지원조례를 만들고 홍명상가 상인들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점포를 마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나섰기 때문이죠. 아직 많은 분들이 장사할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만, 곧 대전 동구청이 가오지구로 이전하면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과 영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하니 잘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어쨌든 홍명상가 상인들의 양보와 대전시의 노력으로 보상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철거가 시작됐지요. 중앙시장 등 인근지역에 대한 피해가 예상돼 중앙데파트처럼 순식간에 폭파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압쇄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철거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2009년 9월 9일, '굿바이 홍명상가'가 행사가 열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잔재물을 무너뜨리는 이벤트가 있었지요.
2009년 9월 홍명상가의 마지막 잔재물이 철거되고 있다. <photographer YKJ>
이날 상인들의 고별사가 어찌나 눈물겨웠던지 행사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별사를 하던 상인도 울었고, 박성효 대전시장도 울었습니다. 이 눈물이 그동안의 반목과 갈등을 넘어 화해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박성효 시장, 당신을 미워도 했지만, 더 나은 대전의 미래를 기대하겠습니다". 홍명상가 상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인들은 투쟁의 대상이었던 박성효 대전시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했습니다. 공권력에 앞서 목민관으로서 상인들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려주었고, 민주적인 방법을 찾아 주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박성효 대전시장도 눈시울을 붉히더군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홍명상가 철거를 이룬 뒤 상인들로부터
박성효 대전시장이 받은 감사패<홍명상가 상인회 제공>
결국 이날의 눈물은 반목과 갈등을 넘어 화해의 길을, 새로운 대전의 이정표를 제시한 셈이 됐습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한 걸음 양보한 홍명상가 상인들, 공권력에 앞서 상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박성효 대전시장에게 모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날의 감동은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여러 장면을 기억하게 합니다만, 여기에서 나열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 후의 이야기입니다. 홍명상가 상인들이 새로운 터전에서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 지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35년 전 없는 땅까지 찾아 건물을 짓던 개발시대의 상징, 그래서 멀쩡한 하천까지 뭉개고 지은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사라진 자리가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해집니다. 대전시는 이 사업을 '목척교 르네상스'라고 부르더군요...
목척교 복원 조감도 <대전광역시 생태하천사업단 제공>
대전시 생태하천사업단에 따르면, 목척교 르네상스는 대흥교(원동사거리와 연결다리)와 선화교(선화초 옆다리) 사이 대전천변 구간을 2010년 3월까지 종합적으로 정비해 찾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사업입니다. 이 구간 1.1㎞구간에는 물이 채워지고, 목척교가 엑스포다리(갑천)에 이어 대전의 새로운 명품다리로 만들어집니다. 바로 옆 은행교는 보행자 전용다리로 리모델링 됩니다.
전선지중화사업과 주변 꽃집이 철거돼 이 일대 경관이 산뜻하게 단장되고, 하천 중간중간에는 하천 속의 섬 하중도가 조성됩니다. 은행교와 중교 사이, 목척교와 선화교 사이에는 정겨운 징검다리가 놓여지고, 은행교와 목척교 사이에는 음악분수가, 목척교 바로 옆에는 위로 치솟는 고사분수가 설치됩니다. 목척교 양 옆으로는 자그마한 목재다리와 돌다리도 놓여져 정겨움을 더할 것 같습니다.
하천변에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마련되고, 조그만 폭포를 연상시키는 벽천도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생태개울체험장, 세계꽃마당, 야생화체험장, 여울 등도 조성돼 도심 속 휴식처로 각광받겠지요.
대전천 여울. 도시화로 자연하천이 인공하천으로 변하면서 대전천은 갈수기면 바닥을 드래내던 건천이었다. 지난해 5월 대전천 상류로 물을 끌어올려 내려보내는 시설이 설치돼 대전천은 연중 일정한 물길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맑은 물이 흐르는 대전천 여울 <photographer YKJ>
조국근대화의 상징이던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철거되고, 생태하천을 복원하는 일. 이는 개발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 환경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대전의 새로운 명소로 태어날 내년 3월이 기다려진다.
- editor : Paul Félix
지난해 8월 1일 대전 1, 2호 백화점인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을 복원하기 위한 도시계획시설사업이 고시됐습니다. 그 후 홍명상가 상인 300여 명의 투쟁 이야기는 시작됐습니다. 그 해 10월 중앙데파트가 폭파방식으로 수 초만에 폭삭 주저앉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바라봐야 했던 홍명상가 상인들의 가슴은 철렁했습니다. "아! 우리의 터전도 저 꼴이 나고 말겠지..."
홍명상가 상인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시청광장에서는 연일 "대전시장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보상을 위한 물건조사를 위해 관계공무원들이 홍명상가를 찾았을 때는 물리력으로 막았습니다. 심지어는 주먹다짐이 있었고, 공무원들은 상인대표들을 공무집행방해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중앙데파트에 이어 홍명상가까지 철거하고, 대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대전시와 홍명상가 상인들의 반목과 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지루한 공방은 1년 여가 지속됐습니다. 상인들은 언젠가부터 도심 속 흉물이 돼 버린 홍명상가가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된 것도 알았습니다. 하천을 메우고, 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세워진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대전천을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대상이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명상가는 자식들을 미래의 동량으로 키우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봉양하고, 동생 학비를 마련해 주던 곳이었습니다. 터전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 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홍명상가 상인들은 일부는 홍명프리존(옛 대전코아)으로, 역전 지하상가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행히 대전시가 지원조례를 만들고 홍명상가 상인들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점포를 마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나섰기 때문이죠. 아직 많은 분들이 장사할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만, 곧 대전 동구청이 가오지구로 이전하면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과 영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하니 잘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어쨌든 홍명상가 상인들의 양보와 대전시의 노력으로 보상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철거가 시작됐지요. 중앙시장 등 인근지역에 대한 피해가 예상돼 중앙데파트처럼 순식간에 폭파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압쇄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철거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2009년 9월 9일, '굿바이 홍명상가'가 행사가 열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잔재물을 무너뜨리는 이벤트가 있었지요.
2009년 9월 홍명상가의 마지막 잔재물이 철거되고 있다. <photographer YKJ>
이날 상인들의 고별사가 어찌나 눈물겨웠던지 행사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별사를 하던 상인도 울었고, 박성효 대전시장도 울었습니다. 이 눈물이 그동안의 반목과 갈등을 넘어 화해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박성효 시장, 당신을 미워도 했지만, 더 나은 대전의 미래를 기대하겠습니다". 홍명상가 상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인들은 투쟁의 대상이었던 박성효 대전시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했습니다. 공권력에 앞서 목민관으로서 상인들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려주었고, 민주적인 방법을 찾아 주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박성효 대전시장도 눈시울을 붉히더군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홍명상가 철거를 이룬 뒤 상인들로부터
박성효 대전시장이 받은 감사패<홍명상가 상인회 제공>
결국 이날의 눈물은 반목과 갈등을 넘어 화해의 길을, 새로운 대전의 이정표를 제시한 셈이 됐습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한 걸음 양보한 홍명상가 상인들, 공권력에 앞서 상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박성효 대전시장에게 모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날의 감동은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여러 장면을 기억하게 합니다만, 여기에서 나열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 후의 이야기입니다. 홍명상가 상인들이 새로운 터전에서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 지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35년 전 없는 땅까지 찾아 건물을 짓던 개발시대의 상징, 그래서 멀쩡한 하천까지 뭉개고 지은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사라진 자리가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해집니다. 대전시는 이 사업을 '목척교 르네상스'라고 부르더군요...
목척교 복원 조감도 <대전광역시 생태하천사업단 제공>
대전시 생태하천사업단에 따르면, 목척교 르네상스는 대흥교(원동사거리와 연결다리)와 선화교(선화초 옆다리) 사이 대전천변 구간을 2010년 3월까지 종합적으로 정비해 찾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사업입니다. 이 구간 1.1㎞구간에는 물이 채워지고, 목척교가 엑스포다리(갑천)에 이어 대전의 새로운 명품다리로 만들어집니다. 바로 옆 은행교는 보행자 전용다리로 리모델링 됩니다.
전선지중화사업과 주변 꽃집이 철거돼 이 일대 경관이 산뜻하게 단장되고, 하천 중간중간에는 하천 속의 섬 하중도가 조성됩니다. 은행교와 중교 사이, 목척교와 선화교 사이에는 정겨운 징검다리가 놓여지고, 은행교와 목척교 사이에는 음악분수가, 목척교 바로 옆에는 위로 치솟는 고사분수가 설치됩니다. 목척교 양 옆으로는 자그마한 목재다리와 돌다리도 놓여져 정겨움을 더할 것 같습니다.
하천변에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마련되고, 조그만 폭포를 연상시키는 벽천도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생태개울체험장, 세계꽃마당, 야생화체험장, 여울 등도 조성돼 도심 속 휴식처로 각광받겠지요.
대전천 여울. 도시화로 자연하천이 인공하천으로 변하면서 대전천은 갈수기면 바닥을 드래내던 건천이었다. 지난해 5월 대전천 상류로 물을 끌어올려 내려보내는 시설이 설치돼 대전천은 연중 일정한 물길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맑은 물이 흐르는 대전천 여울 <photographer YKJ>
조국근대화의 상징이던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철거되고, 생태하천을 복원하는 일. 이는 개발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 환경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대전의 새로운 명소로 태어날 내년 3월이 기다려진다.
- editor : Paul Fé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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