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상가의 마지막 남은 부분이 철거되는 장면
2009년 9월 9일, 중국에서는 999데이라고 해서 결혼식이 많이 열렸다고 합니다. 9가 3개 겹치는 이날이 중국에서는 오래오래 영원히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 수 있는 날이라고 해서 결혼식장이 북새통이었다고 하네요...
이날 대전에서는 홍명상가가 철거됐습니다. 1974년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35년만에 사라진 셈입니다.
저는 대전토박이입니다. 어릴적 대전천에서 여름이면 멱 감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습니다. 그런 하천이 없어졌지요,,, 어느 순간부터. 조국근대화사업이라면서 하천 위에 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공구리를 쳐서 건물을 지은거죠. 그 때는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높은 건물이 들어섰으니까요.
조금 커서는 홍명상가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 자주 갔지요. 입장권 끊어서 음료수 마시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지요. 유락통에도 그런 곳이 하나 있었는데, 르네상스는 가수 신승훈이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하던 곳이죠.
홍명상가 앞에서는 친구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저녁 7시 홍명상가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 정확히 시간 지켜서 만나곤 했었습니다. 그 앞 벤치에서는 쑥스러워하면서 여자친구 손도 잡았지요...^^
오늘 이 추억이 어린 홍명상가가 철거됐습니다. '굿바이 홍명상가'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남은 잔재물을 없애는 이벤트를 한 겁니다. 홍명상가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저도 울었습니다. 아니, 여러사람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박성효 대전시장도 울었고, 홍명상가 상인들도 울었습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군요...
행사 중간에 홍명상가 상인들이 추억의 글이란 걸 낭독하면서부텁니다.
-평생을 홍명상가에서 장사했다는 한 아주머니가 추억의 글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평생 그 곳에서 장사를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지난해 10월 중앙데파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금 떨리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둠이 찾아오면 베갯머리를 적시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다"고도 했습니다. 평생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이 그러더라구요. "서울 청계천보다 더 멋진 목척교 주변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그 날 다시 만나자"구요... 아! 저 분은 대전시민 모두를 위해 자신의 터전이 사라지는 걸 용납하셨구나!
그 아주머니는 박성효 시장에게도 한 마디 했습니다.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도 했지만, 시민들을 위해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에 미치자 증오심이 눈녹듯 살라졌다"구요. 그러면서 "홍명상가 상인들과 잡은 손을 놓지 말아달라"고 하시더군요.
이 아주머니도 줄곧 홍명상가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랍니다. 눈에 눈망울이 고인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 분은 "홍명상가는 내겐 너무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중앙데파트처럼 한 순간 폭삭 주저앉혀버리지 왜 저렇게 조금씩 허물어 심장을 갉아 먹듯 고통을 주는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면서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명언이었습니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환경가치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확대되면서 생태복원은 시대의 흐름이 됐다. 상인들도 생계의 터전이었던 홍명상가가 이제는 내 가족과 모든 시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이 분들은 박성효 시장에게 "물러가라"고 퇴진 운동을 벌이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시민 모두를 위해 자신의 터전을 양보한 것이죠...
이 분들이 추억의 글을 낭독할 때 박성효 시장을 봤더니 눈물을 훔치더군요... '상인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을 텐데 옳은 길을 꿋꿋이 걸어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인들의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힌 박성효 대전시장
이날 행사장에는 이만의 환경부장관도 왔는데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원만히 합의를 이뤄내 생태복원하는 곳은 대전이 처음"이라더군요. 환경부에서도 대전천 복원에 100억원의 국비를 지원했다고 하구요... 그리고 홍명상가 철거현장의 모습을 정부에, 청와대에 적극 알리겠다고 하더군요.
박성효 대전시장은 자신이 어릴적 뛰어놀던 곳이 대전천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 아래 박혀있는 콘크리트 말뚝을 철거하는 일은 재해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하네요. 77년인가 대전천이 범람한 것도 이 말뚝 때문이라고 하구요.. 지난번 포장마차가 떠내려간 것도 이 때문인데,,, 그 때는 중앙데파트가 철거돼 포장마차들이 뚝에 막히지 않고 흘러간 덕분에 범람이 되지 않았다구요...
무엇보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물고기가 뛰노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데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이 모이고, 원도심을 다시 살리는, 회춘시키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행복한하천, 3천만그루 나무심기,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이런 정책들이 결국 대전의 경제를 살리고, 대전의 미래,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란 걸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화이팅!!! 대전시민 화이팅! 홍명상가 상인 화이팅!
지하상가와 홍명프리존(옛날 대전코아) 등에 홍명상가 상인들이 많이 이전했다고 합니다. 이 분들 가게 많이 팔아주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면 어떨까요?
2009년 9월 9일, 중국에서는 999데이라고 해서 결혼식이 많이 열렸다고 합니다. 9가 3개 겹치는 이날이 중국에서는 오래오래 영원히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 수 있는 날이라고 해서 결혼식장이 북새통이었다고 하네요...
이날 대전에서는 홍명상가가 철거됐습니다. 1974년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35년만에 사라진 셈입니다.
저는 대전토박이입니다. 어릴적 대전천에서 여름이면 멱 감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습니다. 그런 하천이 없어졌지요,,, 어느 순간부터. 조국근대화사업이라면서 하천 위에 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공구리를 쳐서 건물을 지은거죠. 그 때는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높은 건물이 들어섰으니까요.
조금 커서는 홍명상가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 자주 갔지요. 입장권 끊어서 음료수 마시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지요. 유락통에도 그런 곳이 하나 있었는데, 르네상스는 가수 신승훈이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하던 곳이죠.
홍명상가 앞에서는 친구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저녁 7시 홍명상가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 정확히 시간 지켜서 만나곤 했었습니다. 그 앞 벤치에서는 쑥스러워하면서 여자친구 손도 잡았지요...^^
오늘 이 추억이 어린 홍명상가가 철거됐습니다. '굿바이 홍명상가'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남은 잔재물을 없애는 이벤트를 한 겁니다. 홍명상가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저도 울었습니다. 아니, 여러사람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박성효 대전시장도 울었고, 홍명상가 상인들도 울었습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군요...
행사 중간에 홍명상가 상인들이 추억의 글이란 걸 낭독하면서부텁니다.
-평생을 홍명상가에서 장사했다는 한 아주머니가 추억의 글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평생 그 곳에서 장사를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지난해 10월 중앙데파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금 떨리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둠이 찾아오면 베갯머리를 적시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다"고도 했습니다. 평생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이 그러더라구요. "서울 청계천보다 더 멋진 목척교 주변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그 날 다시 만나자"구요... 아! 저 분은 대전시민 모두를 위해 자신의 터전이 사라지는 걸 용납하셨구나!
그 아주머니는 박성효 시장에게도 한 마디 했습니다.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도 했지만, 시민들을 위해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에 미치자 증오심이 눈녹듯 살라졌다"구요. 그러면서 "홍명상가 상인들과 잡은 손을 놓지 말아달라"고 하시더군요.
이 아주머니도 줄곧 홍명상가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랍니다. 눈에 눈망울이 고인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 분은 "홍명상가는 내겐 너무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중앙데파트처럼 한 순간 폭삭 주저앉혀버리지 왜 저렇게 조금씩 허물어 심장을 갉아 먹듯 고통을 주는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면서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명언이었습니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환경가치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확대되면서 생태복원은 시대의 흐름이 됐다. 상인들도 생계의 터전이었던 홍명상가가 이제는 내 가족과 모든 시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이 분들은 박성효 시장에게 "물러가라"고 퇴진 운동을 벌이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시민 모두를 위해 자신의 터전을 양보한 것이죠...
이 분들이 추억의 글을 낭독할 때 박성효 시장을 봤더니 눈물을 훔치더군요... '상인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을 텐데 옳은 길을 꿋꿋이 걸어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인들의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힌 박성효 대전시장
이날 행사장에는 이만의 환경부장관도 왔는데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원만히 합의를 이뤄내 생태복원하는 곳은 대전이 처음"이라더군요. 환경부에서도 대전천 복원에 100억원의 국비를 지원했다고 하구요... 그리고 홍명상가 철거현장의 모습을 정부에, 청와대에 적극 알리겠다고 하더군요.
박성효 대전시장은 자신이 어릴적 뛰어놀던 곳이 대전천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 아래 박혀있는 콘크리트 말뚝을 철거하는 일은 재해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하네요. 77년인가 대전천이 범람한 것도 이 말뚝 때문이라고 하구요.. 지난번 포장마차가 떠내려간 것도 이 때문인데,,, 그 때는 중앙데파트가 철거돼 포장마차들이 뚝에 막히지 않고 흘러간 덕분에 범람이 되지 않았다구요...
무엇보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물고기가 뛰노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데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이 모이고, 원도심을 다시 살리는, 회춘시키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행복한하천, 3천만그루 나무심기,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이런 정책들이 결국 대전의 경제를 살리고, 대전의 미래,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란 걸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화이팅!!! 대전시민 화이팅! 홍명상가 상인 화이팅!
지하상가와 홍명프리존(옛날 대전코아) 등에 홍명상가 상인들이 많이 이전했다고 합니다. 이 분들 가게 많이 팔아주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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