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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 Talking

<황해>바람난 아내에 대한 망상…그리고 범죄의 재구성

김윤석, 하정우 콤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봤다면 <황해>를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밤 10시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봤는데 영화관 문을 나설 때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20분이 지나고 있더군요. 대략 잡아도 2시간30분에서 40분 정도는 영화를 봤는데 건데 관람 내내 지루한줄 몰랐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수작입니다.

#1. 영화 <황해>는 한 조선족 가정의 해체라는 현상을 보여 주면서 시작합니다. 아내가 돈 벌러 한국으로 가는 데 소요된 6만원(한국돈 1천만원)을 갚기 위해 열심히 택시운전수 노릇을 하지만, 빚은 갚을 날이 구만리요, 아내는 연락조차 없습니다. 그 불쌍한 인생의 주인공은 구남. 한국사회의 물질만능주의가 우리 조선족 동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인 거죠. 조선족 경제의 우울한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주위에서는 '구남의 아내가 바람이 났을 것', "한국으로 돈 벌러가면 십중팔구 뻔하다"는 등의 말들 뿐입니다. 그런 말들 때문일까요, 구남은 아내가 왠 사내와 '섹스신'을 벌이는 장면만 가득한 꿈에 시달립니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삶은 아니죠. 더구나 구남은 도박중독자입니다. 마작에 빠져 지내고 집안은 술병으로 가득합니다.

줄거리를 재구성해보자면, 그런 구남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아내도 찾고, 빚고 갚고... 구남의 처지에서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입니다. 개장수이자 연변 조선족 조폭의 보스인 면가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99-1번지에 사는 김승현을 죽이라며 살인을 청부합니다. 이 살인청부는 모 상호저축은행의 과장과 내연관계인 김승현의 아내가 자기 남편을 죽여달라는 것이었죠.

청부살인에 주어진 시간은 열흘. 기회를 엿보던 구남은 아홉째 되는 날 기회를 찾습니다. 그런데 왠 미상의 두 남자가 나타납니다. 또 다른 청부살인자들입니다. 김태원이라는 시내버스 회사의 사장이자 한국의 조폭 두목이 자신의 세컨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김승현을 죽이라고 한 거죠. 결국 김승현의 목숨을 끊은 살인자는 김승현의 운전기사입니다. 그가 김태원의 청부를 받고 청부살인자들과 결탁을 했던 겁니다.

여기까지가 범죄의 재구성입니다. 구남은 약속된 돈이 입금되어 있는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김승현의 엄지손가락을 잘랐을 뿐입니다.



#2. 다시 이야기는 구남의 가정사로 돌아갑니다. 구남은 청부살인을 위해 밀입국한 상태에서도 아내인 '리화자'를 찾아 해맵니다. 구남의 꿈에서처럼 그녀는 바람이 났을까요?

구남의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정황은 점점 사실로 굳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렵사리 목포수산 사장과 "오빠, 동생하며 지냈다"는 수소문 끝에 그 횟집 사장을 찾아냅니다. 그를 족쳐서 아내가 홀로 사는 쪽방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의 방은 딸 아이의 액자가 깨져 있는 것은 물론 온통이 난장판입니다. 정황상 어떤 남자가 아내를 폭행하고 아내는 집을 나간 듯 합니다. 아무래도 아내가 그 남자와 동거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일까요? 아니면 아내에 대한 증오심에서 일까요? 청부살인 다음 날 다시 중국으로 밀입국하기로 했지만 구남은 이틀을 더 줄 것을 면가에게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경찰, 조폭으로부터 쫓기던 구남은 TV 뉴스를 통해 30대 조선족 여인의 토막살인 사건을 전해듣습니다. 처음에는 애써 모른척했지만, 범인이 '목포수산' 사장으로 밝혀진 두 번째 뉴스를 들으면서 그 피해자가 아내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목포수산 사장은 내연녀였던 조선족 여인을 죽였음을 실토합니다. 구남이 흥신소를 통해 확인해보지만 토막살해당한 여인과 사진 속 구남의 아내가 동일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흥신소 직원은 구남에게 "당신의 아내가 확실하다"고 합니다.

영화 <황해>의 마지막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비극적입니다. 구남의 아내는 결코 구남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황해>의 마지막 장면은 구남의 아내가 연변 기차역으로 다시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내가 바람났다는  건 구남의 망상이었던 거죠.

결국 이 망상에 이끌려 한국으로 밀입국한 구남은 황해바다의 물고기 밥으로 던져집니다.


#3. 영화 <황해>는 '택시운전수살인자조선족황해'로 이어집니다. 이는 구남이 제3자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입니다. 연변에서 구남은 빚을 갚기 위해 택시운전수를 하면서 마작에 빠져든 알콜중독자입니다. 구남은 비록 청부살인을 위해 한국으로 밀입국했지만 살인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살인자로 비쳐집니다. 김승현의 운전기사를 죽인 것도 구남은 아닙니다. 구남이 가진 건죽은 김승현의 엄지손가락 뿐입니다.

구남은 조선족입니다. 김승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구남이 조선족임이 밝혀지면서 구남은 조선족입니다. 황해를 통해 밀입국한 구남은 결국 황해바다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는 충분히 예견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조선족 구남에게 돌아갈 땅은 연변도, 한국도 아닙니다. 영화 <황해>는 이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