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신공항이다 과학벨트다 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는 전적으로 정부책임이다. 정부가 소신 있게 국책사업을 밀어붙이지 못하니 지역 간 갈등만 부채질하는 꼴이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공모라는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지역에서는 예산낭비, 행정력 낭비만 커지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대덕연구단지를 당시 충남 대덕군에 조성한 것이나, 김영상 정부가 정부3청사를 대전에 조성한 것은 모두 중앙정부의 의지에 달려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지역 간 경쟁방식이란 미사여구를 앞세워 지역 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 사업이나 로봇랜드, 첨단의료복합단지가 그랬다. 당초 정부의 취지나 원칙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전 정부나 현 정부나 바뀐 게 없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은 대통령의 공약으로 추진되는 국책사업까지 원칙이 바뀔 수 있다는 걸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공약을 밀어 붙이려다 헌재의 위헌판결에 부딪쳐 무산됐다지만,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공약도 변질될 수 있다며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세종시나 과학벨트가 그런 경우다.
사실 세종시는 이명박대통령의 공약이나 마찬가지다. 전임 대통령께서 대선 때 내건 행정수도 건설공약이 우여곡절 끝에 행정도시로 변질됐고, 이 대통령께서 이를 보완했으니 말이다. 이를 대통령의 입을 빌리자면 ‘이명박표 세종시’가 바로 지금의 세종시인 셈이다.
우리는 이 대통령께서 대선후보 시절, 충청권 최대 현안인 세종시가 원안대로 건설된다면 자족기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했고, 심지어는 유령도시가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세종시 원안에 담겨 있는 행정기능에 과학비즈니스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게 바로 ‘이명박표 세종시’고, 과학벨트는 그 안에 포함된 개념이다.
공약, 그것도 대통령의 공약이라면 그 분의 식견과 비전을 국민 앞에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포부가 공약이란 압축된 형식으로 국민들 앞에 발표된 것이고, 국민들은 공약 하나하나를 따져보고 대통령을 선택했다. 하나의 대선공약이 발표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옳고 그름을 따져볼 것인가.
세종시 원안에 대한 수정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해서, ‘이명박표 세종시’란 대선 공약이 함께 물거품이 됐다고 본다면 그것은 국민들을 우롱한 처사다. 이명박정부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광역경제권으로 국토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이른바 5+2 광역경제권 발전 구상이다. 여기서도 충청권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다는 과학벨트와 유사한 개념이 수립됐다. 심지어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과학벨트의 최적 입지로 세종시를 꼽지 않았나. 교과부는 세종시를 거점지구로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충북 오송․오창 등을 기능지구로 구축해서 과학벨트를 구축하겠다는 정책적 구상을 마친 상태였다.
세상에 과학을 나눠 먹겠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어디있나. 현대과학은 IT와 BT, NT 등 모든 분야가 협력의 형태로 세상을 바꿔 놓을만한 발명품을 양산하는 체제다. 대덕특구의 과학자들이 협업을 하고,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 등의 핵심시설을 설치해 세계적 과학자를 유치하려는 게 과학벨트다. 과학을 통해 선진국으로 가자는 게 과학벨트의 취지다. 당초 구상대로 충청권 과학벨트, 즉 C벨트를 키워놓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K벨트로 나가는 게 순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종시와 과학벨트는 애당초 한 몸이란 점이다. 원래 하나였던 걸 자꾸 떼어놓으려 하니까 정부 스스로 논리의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 정부에게 가장 시급해 보이는 건 실추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명박표 세종시’는 물 건너간 게 아니다. 정부는 자기모순에서 하루빨리 빠져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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