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 무더기 퇴출, 그 이유는?

“저 아파트 18층 살고 있습니다. 그냥 확 뛰어 내릴 작정입니다.” 며칠 전 한 대학의 교양과목 담당직원에게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직원은 겨우 달랬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협박 비슷한 전화를 건 사람은 대학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은 이 대학 시간강사다.

시간강사들이 무더기로 퇴출되고 있다.

30일 지역 대학들에 따르면, 각 대학들이 교양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교양교육을 총체적으로 담당하는 단과대학 등을 신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양교육특성화’, ‘융복합교육 강화’등의 이름아래 전임교원들의 강의 부담이 높아지면서 시간강사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교양교육 강화 한다면서 시간강사 ‘대량 해고’

   
대전대는 올해 교양학부대학을 신설하는 등 교양교육특성화 사업을 가장 빠르게 추진해왔다.
‘교양교육특성화’ 부분에서 가장 앞선 지역대학은 대전대다. 대전대는 지난 2006년부터 교육개발센터를 세우고 교양교육특성화 사업을 강도 높게 추진해왔다. 지난해 센터를 교양교육원으로 승격시킨 데 이어 올해 들어 ‘교양학부대학’(학장 윤치영)이란 단과대학을 신설했다. 그러면서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교양과목 학점을 예전의 20학점 내외에서 40학점 이상으로 높였다.

이 대학 관계자는 “서울지역 대학들이 교양교육원, 기초교육원 등의 이름으로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이에 맞춰 대전대도 미국 리버럴아트칼리지 등을 벤치마킹해 교양교육특성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교양교육의 내실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추진된 이런 혁신 방식이 시간강사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 현재 이 대학 교양강좌의 평균 70%를 전임교원이 담당하고 있고, 필수교양의 경우엔 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이 80%에 달한다.

이 관계자는 “영어나 국어, IT 등의 교과목은 분반수가 워낙 많아 시간강사 활용 비중이 높았는데 이런 부분까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남대는 교양융복합대학을 신설하고 부총장이 학장을 겸직키로 했다. 올해 들어 100여 명이 줄어든 이 대학 시간강사는 단과대 신설로 추가 감원이 예상된다.
한남대도 전임교원의 강의부담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지난해 700명을 상회하던 시간강사를 올해 들어 100명 이상 줄였다.

이 대학은 최근 ‘교양융복합대학’이란 단과대를 신설해 다음 학기부터 운영에 들어간다. 오주원 부총장이 학장을 겸직키로 했다. 이 단과대가 출범하면 역시 전임교원의 강의 부담비율이 높아지고, 퇴출되는 시간강사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학 관계자는 “단순히 구조조정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며 “교양과목 강화가 시대적 추세이고 전임교원을 확충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도 고려해 달라”고 했다.

목원대도 지난 3월 교양교육원(원장 장수찬)을 신설하고 다음 학기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교양교육원 출범을 앞두고 처음 벌어진 일은 시간강사들에게 ‘폐강 통보’를 한 것. “교양교육이 유행처럼 강조되고 학문간 융복합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를 반영하기 위한 개편작업”이라는 게 대학 측의 입장이다.

교양교육 강화와 시간강사 퇴출의 함수관계는?

   
목원대는 '교양교육원'을 신설하고, 시간강사들에게 '폐강' 통보를 했다.
교양교육 강화와 시간강사의 무더기 퇴출 사태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대학들이 교양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목 아래 시간강사 감축에 나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시간강사 처우개선 법과 교육부의 학부교육선진화사업,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이른바 ‘대학선진화’ 방안이 그 근본적 원인이다.

교육부는 전임교원 확보율이나 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 등의 평가지표로 대학을 압박해왔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임용 당시의 계약으로 재임용 내지 승진임용의 기회를 제한받는 비정년트랙을 대거 선발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시간강사 처우개선이 현실화 되면 시간당 강의료가 8만원까지 올라간다. 시간강사가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할 경우, 주 대학(강의가 가장 많은 대학)은 4대 보험까지 부담해야 한다. 대학들로서는 이렇게 고비용으로 시간강사를 쓰느니 ‘값싼 전임교원’을 뽑아 강의부담 비율을 높이는 게 더 효율적이다. 비용도 줄이고 대학평가도 대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시간강사 처우개선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교원지위를 부여받기 때문에 해고도 어려워진다. 대학으로서는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성도 느꼈을 터다. 정부가 사회적 약자인 시간강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입법화에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시간강사들에게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입학자원 감소에 따라 순수학문 등 비인기학과들이 존폐에 몰려 있다. 대학들이 ‘교양대학’ 등을 신설하면서 교양교육 강화에 나서는 데는 중장기적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이런 학과 교수들을 흡수할 여지를 남겨놓자는 복안도 있다.

한 지역 사립대 교수는 “교양교육을 강화한다면서 오히려 교양과목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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