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ire sans dormir

빵에 문화적 가치를 담는 임영진 성심당 대표

국내 영화사에서 첫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 이 영화에서 소리꾼 유 봉(김명곤 분)은 자신의 직업을 전수하기 위해 송화(오정해 분)를 친딸처럼 키운다. 가업(家業) 대물림은 사실 우리보다 일본이 더 세계적이다. 일본에는 ‘시니세(老鋪)’라고 불리는 장수기업이 2만개를 넘는다고 한다. 여전히 가업을 이으면서 사랑받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한 전문가는 ‘믿음’으로 정의했다. 전통을 판다기보다 그 전통 속에서 유전자처럼 대물림되어온 ‘믿음’을 판다는 얘기다. 그런 일본마저 ‘시니세’의 풍토가 점점 사라지는 움직임이 일고 있단다. ‘믿음’이란 경영철학을 지키지 못하는 ‘시니세’들이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성심당 임영진 대표(가운데)가 최근 국세청으로 받은 '아름다운 납세자 상패'를 앞에 두고 쉐프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대한민국 대표적 '시니세(老鋪)' 성심당

대전의 대표적인 ‘시니세’로 성심당을 꼽는데 주저하는 이는 거의 없다. 1956년 고(故) 임길순 선생이 대전역 앞에 판잣집으로 된 찐빵 집을 차린 게 그 시초다. 그는 밀가루 외상값 독촉에 시달리는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상 넉넉하게 찐빵을 만들었다. 남는 찐빵은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돕는 데 썼다. 기적처럼 월남해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것만 해도 감사한 인생이란 생각에서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함주. 그는 처와 7남매를 데리고 1950년 월남의 마지막 기회였던 ‘매러디스 빅토리호’를 가까스로 승선할 수 있었다. 임 선생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찐빵은 생명이었지요.”

성심당은 올해로 창업 55년을 맞았다. “과거 55년의 성심당은 ‘나눔의 빵집, 맛있는 빵집, 혁신적인 빵집’이었다면 앞으로는 과거의 가치에 사랑의 문화라는 가치 하나를 더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는 임길순 선생의 아들, 임영진(57) 씨다. 그는 ㈜로쏘 성심당의 대표다. 그는 빵집 성심당을 플라잉팬, 테라스치킨, 우동야, 삐아또, 리틀토모, 오븐스토리 등의 패밀리를 거느린 외식기업으로 키웠다. 여기에는 임길순 선생의 ‘믿음’이란 경영철학이 있었다. 성심당이 국내의 대표적인 ‘시니세’로 평가받는 이유다.

대학 1학년 때 아버지 오븐 앞에 처음 서다

55년 전 대전역 앞 찐빵 집 성심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과 브랜드가 됐다. 성심당을 외식기업으로 키운 임영진 대표.

그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반죽을 만지기 시작한 건 대학 1학년 때인 1973년부터다. 당시 다섯 명이던 직원이 집단으로 파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보기만 했지 정작 오븐 앞에는 처음 서봤다. “일손이 모자라 아버지를 돕기 위해 처음 빵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두렵기만 했지요. 그런데 점점 빵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지요. 빵은 반죽과 발효 정도에 따라 천의 얼굴을 만들거든요.” 그는 학교 수업까지 빠져가면서 빵을 만들었다.


성심당은 현재 정 직원만 100여 명. 연 매출이 100억 원에 달한다. 기업형 빵 공장이 아닌 ‘제과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의 제과점과 중국, 대만 등에서 성심당을 배우러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성심당은 대전의 명소 중 한 곳이다. 그러면서도 임길순 선생이 지켜온 나눔의 철학을 지켜오고 있다. 지금은 200여 단체에 연 평균 850회, 월 평균 1,200만 원 상당의 빵을 매일 기부하고 있다.

임 사장과 즉문즉답(卽問卽答)식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빵에 일곱색깔 무지개를 담아내다

 

임 사장에게 "한 마디로 당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는 “빵이라는 그릇에 문화라는 가치를 담는 사람”이라고 했다. “도대체 그 가치가 뭐냐”고 되묻자 그는 “무지개프로젝트”라고 했다. 임 사장은 “모두가 모두를 위한 일을 하는 것, 모두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하기 위한 실천방안이 바로 무지개프로젝트”라고 덧붙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물었다. 그는 일곱 빛깔에 빗대 설명을 이어갔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만이 아니라 조화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무지개의 ‘빨강’은 경제를 뜻한다고 했다. 매출과 이익 등 일상적으로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의 가치다. “기업이 이윤 말고 추구할 게 또 무엇이냐”고 따지듯 물어봤다. 그는 “이윤 말고 추구할 게 여섯 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그는 주황색은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훈(社訓)이나 추구하는 경영철학에 대해 전 직원이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 그리고 직업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화재로 10억 손실입었어도 납세의무 지켜... '아름다운 납세자 상'

노란색은 '준법정신’이라고 했다. 원산지 표기, 보건위생법, 식품안전법, 소방법, 유통기한법, 근로기준법 등을 어김없이 지키자는 것이다. 그의 ‘준법정신’은 세금을 제대로 내는 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았다. 2005년 대형 화재로 10억 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해 세금을 낼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납부하고 전 직원이 하나가 돼 2년 만에 흑자경영 성과를 이뤄냈다.

초록색은 ‘건강’이다. 맛뿐만 아니라 유기농 등 친환경 식자재 사용을 통해 고객들의 건강에 이로운 빵을 만들자는 정신이다. 파란색은 ‘조화로운 환경’이다. 청결한 환경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색은 ‘지식’이다. 전문성을 키워야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마지막으로 보라색은 ‘공유’다. 성심당은 매주 화요일 오후 ‘한가족신문’을 발행한다. 전 직원이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을 활용해 각자의 생각과 정보를 나눈다. 이 신문은 성심당의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추구하는 일곱 빛깔의 스펙트럼을 담는 그릇이다.

“빵을 통해 일터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치, 그것이 바로 빵에 담긴 문화의 가치입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다.

임영진 사장은 누구?

임영진 사장은 1954년생으로 삼성초, 한밭중, 충남고를 나왔다. 충남대 섬유공학과 73학번이다. 대학 1학년 때 ‘가불을 해 주지 않는다’며 직원들이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처음 밀가루 반죽에 손을 댔다. 프랑스의 세계적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의 분원이 숙명여대에 설립되자마자 1회로 수료했다. 1981년부터 성심당 경영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1992년 외식사업부를 신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