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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ire sans dormir

정부가 줏대가 없으니 너도 나도 핫바지 타령

'핫바지'란 솜을 두어 지은 바지로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두리뭉실한 바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충청도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 적이 있지요.

이는 '뜨끈미지근'한 충청도 사람의 성향을 빗댄 말입니다. 충청도 사람들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뭔가 분명치 않은 언행을 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네이버 사전에는 '핫바지'를 이렇게 정리해놓고 있더군요.

                                                                      <출처 - NAVER 사전>

그런데 충청도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던 '핫바지'가 전국 모든 곳에서 "우리가 핫바지냐?"는 정치선동적인 용어로 자주 채택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정치선동적으로 이용된 건 3공화국의 거물정치인인 JP(김종필)씨가 '3김 해금' 이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대전역 집회를 하면서 "영호남은 자기 지역 사람을 밀어주는데 왜 충청도는 자기 지역을 밀어주지 않느냐... 충청도가 핫바지냐?"는 식으로 말하면서부터입니다.

'핫바지'는 당시 지역일간지인 <대전매일>(지금의 충청투데이)이 킹메이커로 대단한 확약을 펼쳤던 허주(김윤환/작고)로부터 수백억원 대의 소송에 휘말리도록 만들기도 했죠.

이후 '핫바지'는 신민주공화당-자민련-선진당으로 이어지는 충청도 지역정당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참 많이도 들어야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과학벨트와 관련해서도 "충청도가 핫바지냐?"는 말들이 일부 선진당 국회의원들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영호남에서도 "영남이 핫바지냐?", "호남이 핫바지냐" 등의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제 핫바지는 '우리 지역이 정치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으니 우리 지역끼리 똘똘 뭉치자'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이는 국책사업을 놓고 벌어지는 지역 간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국책사업을 중앙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역간 경쟁으로 몰고가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사실 국책사업을 지역간 공모로 추진하기 시작한 건 고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 때부터 입니다.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 로봇랜드, 첨단의료복합단지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이미 중앙정부는 어느 지역에서 해당사업을 추진할 건지 이미 다 내정을 하고 있다는 거지요.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 사업은 건설교통부가 인천+인천공항공단 컨소시엄을 낙점했죠. 웃긴 건 인천공항공단이 건교부 산하기관이란 겁니다. 이미 인천으로 갈 사업인데 다른 지역에서 군침을 흘리니 공모라는 절차를 거치는 거지요.  겉으로는 선의의 경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내정해놓고 형식적 절차만 밟는다는 게 문제라는 뜻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자체들은 예산낭비에 행정력만 낭비하는 꼴이 됩니다. 국가적으로보면 정말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 사업은 현재 추진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봇랜드는 더 웃깁니다.

                                                                      <로봇랜드 인천 조감도>

당초 지능로봇산업의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추진됐던 게 완전히 놀이동산 만드는 걸로 변질됐습니다. 더욱이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인천과 경남 마산 두 곳을 선정했죠. 그런 놀이동산을 그 동네사람밖에 더 가겠습니까? 이런 게 바로 나라를 망치는 거죠.

첨단의료복합단지도 그렇습니다. 원래 첨복단지는 대덕연구단지를 배후로 생명과학산업단지로 조성되는 충북 오송에 가기로 내정돼 있었던 겁니다. 이걸 영남에서 "영남 핫바지론"을 들고 나오니까 대구와 나눠줬습니다.

세계 제약시장 진출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국책사업이 이런 식으로 나눠먹기가 된다는 건 국가적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최근의 과학벨트 논란을 보면서 참 한심한 정부라는 생각입니다. 참여정부때 하던 국책사업 선정방식을 소위 실용정부라고 자칭하는 이명박정부가 똑같이 답습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대통령이 과학계 참모들의 연구분석을 토대로 <세종시-대덕연구개발특구-오송,오창>으로 이어지는 과학벨트를 추진키로 공약했으면 그대로 하는 게 맞는 건데 대통령이 나서서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학벨트를 나눠준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과학을 나눠먹는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독재자라고 욕을 해대는 고 박정희 대통령 정부는 그래도 소신은 있었습니다. 1인당 GDP가 300달러도 채 안 되는 시절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선택과집중을 통한 과학발전, 박정희 정부는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대덕연구단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습니까? 박 대통령의 그런 강단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