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배재대에서 특강이 있었습니다. 박성효 대전시장이 행정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었습니다. 배재대 행정학과 정하용 교수가 초청해 이뤄진 강연이었는데, 행정학과 선배로서의 경험담을 들려 주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강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행정 경험에 대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대전 중앙로에 횡단보도가 20년 만에 설치하게 된 경험담이었습니다.
20여년 전 대전역부터 충남도청까지 지하상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하로 참 많이도 걸어다녔습니다. 기차 타러 갈 때도 그랬고, 쇼핑도 지하에서 했습니다. "야, 그거 땅굴 패션 아니냐"는 말도 유행했었지요.
그런데 중앙로에 횡단보도가 없었다는 건 잘 몰랐습니다. 나는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노약자나 장애인,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왜 이런 교통약자들을 위해 횡단보도 하나 만들지 않았을까요?
정답은 '표'였습니다. 이전부터 장애인단체 같은 데서 중앙로 횡단보도 설치를 많이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하상가 상인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지요. 지상에 횡단보도가 생기면 지하로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테고 장사하는데 지장을 받는다고 생각했을테니까요.
횡단보도 설치를 반대 시위를 벌이는 지하상가 상인들(출처 연합뉴스)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니 소위 교통약자들의 요구는 매번 묵살됐습니다.
그런에 이런 중앙로에 횡단보도를 5곳이나 설치했다고 하더군요, 다른 자랑거리도 많을텐데 시장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게 횡단보도 만든거랍니다.
흰 선 긋고 신호등만 만들어주면 될 작은 일이지만, 가치적인 측면에서는 큰 일이란 거지요.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행정의 기본원칙은 정직이랍니다. 횡단보도 설치하는데 웬 정직이냐고 하시겠죠.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면 쭈뼛쭈뼛해지고 용기가 안 생겨서 원칙있는 일을 못한다는 겁니다.
눈앞의 인기에 연연해, 당장의 비난이 무서워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공직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릇 행정의 기본은 다수의 이익이다. 하지만 목소리 큰 사람 때문에 다수의 이익이 침해받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국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미국은 공권력이 강력한 나라입니다.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용납하지 않는거죠. 그래서 다양한 이민족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민주주의를 꽃 피울수있었겠죠. 그건 미국인이 잘 나서 그런게 아니라 그런 시스템이 잘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공권력이 때로는 잘못사용되어 문제지만, 공권력을 무시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나보다 약한 사람,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는 그런 문화가 많이 확산되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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